살아가는 이야기

찐빵예찬

박상화 0 720

 

우리가 언제 처음 만났더라..? 기억은 갓 꺼낸 찐빵에서 오르는 하얀 김처럼 아른아른하지만, 언 손을 붙잡아 주던 따스함과 그 보도라움은 벌써 손 끝을 먼저 감도는 것이다.

찐빵과 함께 한 날들은 모두 눈부셨다. 흐르는 코를 연신 빨아대다 못해 소매로 훔치면서도 눈을 떼지 못하던 만화책 속에서 너를 만났었다. 가난한 주인공은 너무 배가 고파 찐빵가게 앞에서 모락모락 익어가는 찐빵을 꺼내다가, 고릴라 같은 빵집 조리사에게 덜미를 잡히던 정경이었다. 열권에 십원짜리 만화책을 보던 어린 나라도 찐빵을 사주고 싶었던 안타까움, 한번도 본 적 없던 찐빵은 그렇게나 맛있어 보여 움푹한 배를 살며시 붙잡아 보기도 하였다.

알고보니 찐빵은 도깨비방망이였다. 배고픈 주인공은 찐빵가게 주인 할아버지의 배려로 찐빵을 한 접시 먹게 되었는데, 찐빵을 먹던 중에 돌이 씹혀 꺼내보니 반짝이는 금반지였다. 주인공은 금반지를 할아버지께 돌려드렸고, 알고보니 부자 할아버지가 정직한 사람을 찾아 유산을 물려주기 위해 모든 찐빵에 금반지를 넣은 것이었다. 사람들은 모두 금반지를 슬쩍 했으나, 오직 이 주인공만이 금반지를 돌려 주었고, 그 보답으로 금고에 돈이 가득한 유산을 물려받아 행복하게 살았다는 이야기였다.

찐빵만이 희망이었다. 여섯살이었다, 나는. 찐빵을 먹어야 금반지를 돌려줄텐데 우리동네에는 안타깝게도 찐빵가게가 없었다. 하얗게 줄 서 차곡차곡 늘어진 다발이 키 큰 국숫집과 연탄가게, 맛없는 약국 뿐이었다. 더 멀리 나가면 있을지도 모르는 행복한 찐빵가게를 찾아 조그만게 혼자 사거리를 두개나 건너갔지만, 찐빵가게는 없었다. 나는 돈도 없었고, 찐빵가게 유리창에 매달려 있어나 볼 요량이었지만, 그러면 주인할아버지가 나와서 찐빵 한접시를 주고, 그러면 나도 금고에 현찰이 가득 든 유산을 물려 받게 될 것이었다. 그러면.. 그러면.. 시장에서 노점하는 엄마가 파는 생선을 한다라 다 사주고, 너무 좋아서 활짝웃는엄마의 손을 잡고 일찍 퇴근하고 싶다는 꿈이 몽글몽글했었다. 안타까운 여섯살에게 찐빵가게는 없었다. 그때 내 앞에 진빵가게만 있었어도 내가 오늘날 요모양 요꼴로 살지는 않았을 건데 그랬다.

눈물 젖은 찐빵을 먹어 보았는가 말이다. 찐빵타령을 하는 내게 할머니는 찐빵을 만들어 주셨다. 근데 할머니의 찐빵은 금반지도 없고, 빛깔이 누랬다. 새하이얀 찐빵이어야 했다. 금반지가 들었어야 했다. 보도랍게 쪼개면 김이 모락모락 나고 포실포실 눈처럼 부신 하얀 속살사이에 새까만 앙꼬가 들었어야 했다. 보드랍고 말랑말랑해서 엄마젖 같아야 했다. 할머니의 찐빵은 누렇고 단단했다. 아담하고 봉긋하지 않고 크고 넙적했다. 게다가 막걸리 냄새까지 시큼 했다. 앙꼬는 흑단처럼 아름다운 검은 빛이 아니라 칙칙한 붉은 빛이 돌았다. 영문을 모르는 할머니는 기에이 역정이 나셨고, 수숫대로 만든 방비짜루로 한대맞은 나는 눈물젖은 찐빵을 먹어야만 했었다. 그 뒤로 눈물젖은 찐빵을 먹어보았냐는 말에 나는 자신이 있었다. 그런걸 먹어보지 못한 동급생들의 가려운 뒤통수는 차암 어려 보였다.

가짜 찐빵도 있었다. 눈이 어두운 할머니가 매우 신중하게 더듬더듬 옷핀으로 젖꼭지를 찌르는 바람에 결코 잊지 못하게 된 파란 테두리의 하얀 거즈 손수건과 비닐로 된 이름표 껍데기가 없어 난닝구포장에 들었던 두꺼운 종이에 쓴 이름을 달고 국민학교를 입학했을 때, 비로소 나는 학교앞 가게에서 둥그런 찐빵통을 처음 만나게 되었는데, 돈도 없었지만, 그건 내사랑 찐빵가게가 아니었다. 회사에서 만든 찐빵에서 금반지가 나올리 없다는 것쯤은 눈치 챌 정도로 나는 이미 굵어 있었다.

찐빵은 따뜻했다. 연탄가스 냄새가 솔솔 나는 겨울밤, 시커멓게 탄 노란 장판을 덮은 두터운 꽃무늬 이불에 발을 넣고 각자 둘러 누운 우리는 먹고싶은 게 많앴다. 우풍이 머리칼을 쓸어주고 문창호지 앞에서 부르르 떨다 나가는 방엔 근속 5주년 기념으로 태엽을 감아줘야 딩딩거리는 나만한 괘종시계가 하나 붙어 있었고, 많이 참은 낙서와 씹다 붙였다 떼어내느라 벽지가 찢어진 껌자리와 상장들, 사진 몇장이 풀럭풀럭 밥풀을 드러내며 감추며 붙어있었다. 산동네의 겨울바람은 집이 날아가 지나 않을까 싶게 불었다. 집이 날아가면 재밌겠지? 그럼 우리도 초록빛잔디와 온통 다이아몬드나 보석으로 길을 깐 이상하고 아름다운 나라로 가지 않을까? 금돈으로 된 산에서 미끄럼 타고, 그치? 금돈으로 된 산에서 고작 미끄럼 타는게 전부였던 모험담으로 시시덕 대는 겨울 밤을 뚫고 아버지는 하이얀 찐빵 몇개를 품에 담아 부시럭 부시럭 들어 오시곤 하셨다.

찐빵은 그리운 것이었다. 추운 날이 아니어도 찐빵을 먹으면 귓가엔 어느새 겨울바람이 지나가고, 창 너머 눈보라가 휘날린다. 손이 꽁꽁 얼도록 놀던 어린 날, 아버지 어머니는 밤 늦도록 아버지의 낡은 스웨터를 풀어 우리들의 장갑과 목도리를 뜨셨다. 아버지는 어머니보다 뜨게질을 잘 하셔서 간혹 어머니께 훈수를 두고는 하셨는데, 그렇게 두분이 킬킬거리며 합작으로 만든 바지를 나는 죽어도 입기가 싫었었다. 온갖 나머지 실들로 짠 바지는 당시로선 파격적인 풀칼라였는데, 그건 마치 얼룩덜룩한 걸레같았다. 단색의 깔끔함을 사랑하던 나의 패션감각으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바지였다. 결국 내가 울면서 두번을 입는 것으로, 그리고 다시 풀러서 벙어리 장갑을 만드는 것으로 끝난 그 바지는 눈을 두번만 뭉치면 푹 젖어서, 늘 손을 꽁꽁 얼게하고, 언 손을 녹이며 울게 만들었다.

찐빵, 신이 잠시 머물다 간 시간의 모양은 그랬을 것이었다. 친구가 경기도 이천시 하고도 도니울 마을에서 찐빵 체험 수업을 진행한다니, 볕 좋은 날이라도, 볕이 좋지 않은 흐린 날이라도, 아무런 날이라도 가서 찐빵을 만들어 보고싶다. 아이의 동그란 손이 조물조물 반죽을 뭉쳐 만드는 찐빵은 작고 동그랄 것이다. 쌀가루로 만든 떡찐빵은 떡을 밥보다 좋아하셨던 할머니를 소환할 것이고, 그 부드럽던 손등의 주름과 어떤 일이건 안아주시던 품을 기억하게 할 것이다. 우풍이 세고 가난한 스레트집이었다. 비가 오면 토드락토드락 두드리는 소리가 좋았다. 세상이 떠가는 장마에도 산사태에도 그 작은 집은 우리와 함께 살아남았고, 작은 마당에 눈부시게 흰빨래를 널어주곤 했다. 생선 궤짝을 부숴 나무칼을 만들어 놀던 곳, 아궁이에 너울너울 불꽃이 일면 불꽃의 신이 내 어린 넋을 먼 꿈의 나라로 데려가던.. 첫사랑이었다. 그 제비꽃 같은 작은 집에서 나는 찐빵을 만났고, 꿈을 꾸었다. 첫사랑이었다.

 

20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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