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

페친지교를 꿈꾸며

박상화 1 766

 

저녁을 먹고나면 허물없이 찾아가지 않아도 좋으니 세상 쓸데없는 말이라도 주절주절 수다를 떨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커피를 안마셔도 좋으니 내 얘길 읽어주는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고, 함께 월드컵을 응원하는 열정으로 나쁜 대통령의 퇴진과 촛불을 목청높여 응원하며, 내 친구가 "세월"자만 들어도 눈물부터 나는 기가막힌 이야기에 나도 울었다고 쓰면 좋겠고, 세상에 넘실대는 아픈 사람들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순진무구한 마음을 써도 허물없이 '좋아요'를 눌러주는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나의 친구는 교양이 찰찰 넘치거나, 하늘을 찌르는 고학력이 아니어도 좋고, 문제를 분석하고 솔루션을 제시하며 든든한 뒷배가 되주기 보다, 내가 당한 분하고 세상 서러운 일에 같이 욕이나 해주면 족하고, 댓글씩이나 달아주는 걸 바라지 않고, 나의 계급이나 재력이나 학력을 따져 묻지 않고, 우리는 서로 뭐하는 사람인지 모르더라도 좋으며, 나도 그가 당한 서러운 일에 걸맞는 욕을 해줄 수 있는 친구이길 바라며, 내 기분이 꿀꿀해서 친구의 글이 다소 못마땅해도 '좋아요'를 눌러주는 싸가지가 나에게도 있기를 바란다.

딱히 할말이 없어서 ㅎㅎ만 써줘도 고맙고, 내가 줄무늬츄리닝에 늘어진 난닝구 차림이라도 흉보지 않을 것이다. 성별을 따지지 않고, 나이가 많고 적음을 가리지 않을 것이며, 우리 사이는 각자 핸드폰만 있으면 족하고, 그가 음악을 좋아하고 내가 술을 좋아하여 취향이 다르더라도 상관없고, 설령 그가 고양이사진을 올리고 나는 개사진을 올리더라도, 그의 글이 내 눈에 아름답고 마음에 맞으면 아무것도 개의치 않을 것이다.

꽃같은 아내와 사랑이란 말은 방구석에 굴러다니는 구멍난 걸레보다 너덜너덜해진지 오래, 입을 열면 전투력이 치솟고, 눈이 마주치면 분노의 화염이 튀는 현실세계에서, 퇴근하고 들어오다 문소리가 너무 크지는 않은지 염려하게 되고, 희미한 어둠속에서 밥을 차려먹으면 혹시 깰까봐 고민없이 굶기로 하는 현실세계에서, 달아오르는 화를 참는 얼굴이 보이면 없는 꼬리대신 두꺼운 허리라도 말고 양말 속이라도 숨고 싶어지는 하루하루는 숨가쁘다.

오랜만에 동창을 만나면 계급부터 확인하게 되는 세상의 처세술에 따라 입성을 훑고, 명함을 나누는 순간 이미 벽이 생기고, 술자리가 한군데로 쏠리는 것과 컴컴한 구석자리 수많은 어릴적 동무들 곁에서 혼술을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면, 갑자기 없던 약속이 생기고, 튼튼한 아내는 갑자기 십년째 앓아 눕게 되며, 건넌방에 계신 노모도 시골에서 올라오셔야만 하는 핑게는 버겁다.

회사는 원래부터 미로 안에 있었고, 전철간은 몸을 비비고 섰어도 남이고,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도 남이며, 딸은 씹덕이니 설명충같은 외계어를 구사하는데다 냉랭하기 겨울 북풍이 따로 없고, 아들이 하는 게임은 곁에서 아무리 봐도 깨우칠 수 없는 중년의 밤은 어둡다.

고객도 갑이고, 상사도 갑이고, 갓 들어온 신입사원조차 갑이다. 휘하의 왼팔, 오른팔이 눈치 찢어지는 경쟁상대가 된지는 오래, 소리내어 씨ㅂ씨ㅂ할 수 있는 데라곤 혼자 거래처 나가는 차안에서 뿐인데, 씨ㅂ거리는데 정신이 팔리다 들이 받기도 하고, 들이 받히기도 하며, 무서운 욕을 하며 다가오는 프로레슬러같은 운전자를 상대하여야 하는 일은 무섭기만 한 것이다.

교회를 가면 주를 만나는 일은 어찌나 따땃한지 노곤노곤 그렇습니다 그러합니다 하다가, 찬송가를 몰라 붕어처럼 버끔거리다, 교통위원같은 것도 맡게 되고, 행사추진 위원같은 짐도 지게 되며, 봄만 되면 겨울을 잘 참던 노인네들이 단체로 저승길 벚꽃놀이라도 가시는지, 꽃등 환한 봄날 저녁은 장례식장이 매일이고, 결혼식은 어찌나 많은지 국민학교때 여름내 밀쳐둔 그 아득하던 방학숙제보다도 많다.

가족들과 여행도 가고 그래야 사는 것 같으므로 주말 고속도로에서 서너시간씩 가다서다 하다보면 운동이라곤 안한 종아리는 금새 쥐가 나고, 짜증섞인 가족을 끌고 온 바다에 운치같은 게 있을 리 없으며, 산에선 인파에 밀려 굴러 떨어질 뻔하고, 맛있다는 집에 두시간 줄을 서서 드디어 앉으면 십분내 후딱먹고 자리를 비켜줘야 하는 상황을 눈치채게 되고, 수저는 날듯이 움직이는데 버리는 건지 무슨맛인지 기억하지 못하는 레저스포츠라이프도 힘들기만 하다.

그러므로, 나의 페친은 대학교수여도 좋고 일당 노가다라도 좋다. 그 입성이나 먹성이 문제가 되지 않으며, 다만 꽃과 고양이와 강아지를 사랑하고, 세월호에 아파하며, 사드를 반대하고, 4대강에 분노하며, 원자력을 철폐하고, 쫒겨난 노동자를 아파하고, 철거와 골프장을 반대하며, 혹시 여유가생겨서 천원이라도 나눌수 있는 따뜻함을 자랑자랑하는 사람이면 좋겠고, 무엇보다 박근혜퇴진에 찬성하는 사람이면 우선 족하다.

긴 겨울을 이겨낸 환한 기쁨도 눈 깜박할 사이, 봄은 봄대로 분주하여 질척한 한숨을 토하고, 이래저래 가슴에 쌓인 쓰레기통은 비워줄 곳을 못찾아 버퍼링만 늘어가는데, '좋아요'를 눌러주는 친구만 있어도 또 얼마나 세상 위로가 되는 따뜻한 봄날이겠는가.

자기 집을 설계하는 낭만과 자기 옷을 재는 여유와 자기 밥을 짓는 아름다움을 뺏기고, 주어진 박스에서 살고, 규격된 옷에 몸을 맞추며, 만들어진 밥을 삼키는 일은, 빨리빨리 의식주를 해결하고 생산을 하라는 재촉이니, 생각하면 새삼 슬프지 않은가. 이제 스스로를 위하여는 아무것도 못하고 생산만 하는 것도 목줄을 매달고 매달리는 시대에, 말도 못하고 갑갑한 일상속에서, 너 '좋아요'를 눌러주는 페친은 얼마나 큰 위안인지 사무치고 마는 것이다.

봄날 꽃등 환한 가로수길을 보며, 갑자기 쫒겨나 길거리에서 자는 억울한 노동자들에게 미안한 한숨을 나누며, 그들에게 음식을 싸 갖고 가서 먹여주진 못하더라도, 후원금을 클릭할 형편이 안되더라도, 응원한다고 함께 '좋아요'를 눌러주는 페친지교를 꿈꾸다보면, 사람이 죽는 것은 말할 데가 없어서라는 외로움인 것을 새삼 생각하고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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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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