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

봄물

박상화 0 705

외로운 긴긴 밤 내내 뜨거워 뒤척거렸더니 전기요 온도가 꼭대기까지 올라가 있다. 술을 한홉 마시고 기어들어갈 때 한기를 느끼긴 하였으나.. 온도를 올린 기억은 없다. 이런 짜장같은 일이 있나 두덜두덜 부시시 기어나오는데, 창 밖에, 창 밖에 굵디 굵은 눈이 남부럽쟎게 쏟아지고 있다. 요 며칠 칠랄레팔랄레 봄봄봄거리고 다녔다고, 그렇다고 눈이 와?

눈이 온다. 펑펑 온다. 그러나 너넨 늦었다. 벌써 자작나무 가지는 벌겋게 물이 올랐다. 호랑버드나무도 햇솜같은 동아가 났다. 솜망울같은 눈은 바닥에 닿으며 녹아 사라진다. 아직 냉기가 남은 풀나무 꼭대기나 사람들 머리에만 허옇게 쌓여갈 뿐이다. 그래도 많이 온다. 세상 떠가겠다는 듯 쏟아진다. 봄 눈이어서 일것이다, 눈송이가 꿀벌떼 보다 크고 말벌떼 만해 보이는 것은. 뭘 좀 사러 월마트를 다녀오는 길 차창에 흰상복을 입은 말벌떼가 끝도 없이 달겨든다. 어젯밤 부산쪽에서 매화가 피었다는 소식을 듣더니, 올 봄 내가 본 첫 꽃은 하얀 목화송이같은 눈꽃이다.

어느 해인가 작은 식물을 사러 꽃하우스를 들어갔는데, 하우스를 가득 채운 하나의 향기에 그만 넋을 빼앗기고 말았다. 입구부터 자잘한 화분과 분재들이 올망졸망 나래비 선 그 안에서, 온 공간을 압도하는 것은 단연 한가운데에 있던 흰등꽃이었다. 많지도 않고, 딱 한주, 매달린 것도 아니고 화분에 심어져 지지대를 타고 기품있게 서있던 등나무를 주인장은 몇년 공들여 키운것이라 했다. 그 향기의 카리스마에 압도되어 내가 어떻게 꽃가루를 옮겨주고 싶을 정도였다. 내 손에 맡겨진 식물들은 다 거름으로 돌려보내는 마력을 가진지라 갖고 싶은 걸 어렵게 참았는데, 그 자태 그 향기는 아직도 내가 소환하면 샤샥- 나타나 주곤 한다. 어떻게 살고 있을지 궁금하기도 하네.

얼음 풀린 땅에게는 눈이나 비나 매 한가지 물인가 싶다. 다 받아들이고 스민다. 그래서 꽃샘이라 했나보다. 꽃을 시샘하는 추위는 이제 가거라. 이미 얼음은 풀렸으니, 차가운 이 눈조차 거둬들여 지혜로운 농부는 생명을 키울 것이다.

아, 근데, 과하게 고요하다. 오늘 슈퍼볼 하는 날이라고 죄 들어앉아 미식축구에 열광하는 동안, 혼자 남겨진 것 같은 가게주인은 부시럭부시럭 옛등꽃이나 소환하고, 팔아야할 담배나 쪼그려 태우고 앉았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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