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

박상화 0 722

두근 거렸고, 얼굴은 빨개졌다. 눈깔사탕 두개가 흙때묻은 조그만 손안에 쏙 들어왔고, 덜덜 떨면서 나가다가 붙잡혔다. 아무도 없는 콧구멍만한 구멍가게에서 아줌마는 바로 내 옆에서 보고 있었다. 흙때묻은 손에서 빼앗긴 눈깔사탕은 다시 사탕통으로 들어갔고, 어린 도둑은 무서운 소리를 듣고 훈방조치되었다. 

다섯살이거나 여섯살이었을 때의 그 도둑질은 아직도 기억에 남았다. 그 아줌만 죽었을 텐데. 두개에 오원. 잘못 씹으면 이가 빠지기도 한 질깃질깃한 사탕이었다.

너무나 뚜렷한 자극이어선가 어렸을 때 꿈은 구멍가게 주인이었다. 사실은 만화가게 주인이 되고 싶었지만, 그건 내놓고 말하기엔 좀 떳떳하지 못한 꿈이었다. 그땐 그랬다.

중학교때 애들이 나와서 자기 꿈을 발표하는 시간에 한결같이 대통령, 의사 변호사 박사였는데, 한 친구가 나뭇꾼이라고 말하자 폭소가 터졌다. 근데 그게 멋있어 보여서 나뭇꾼도 좋겠다 싶었다. 어른들은 밥먹고 살기 어려운 건 꿈이 아니라고 쳤다.

어른이 되고 싶었다. 좀 더 지나선 넥타이를 휘날리며 달리는 직장인 되고 싶었다. 결혼이 하고 싶었다. 넥타이가 지긋지긋하고 피로에 쩔은 후에는 다시 구멍가게 주인이 되고 싶었다.

꿈은 꾸는 대로 다 이루어 졌다. 어른이 되었고, 넥타이를 휘날리며 달렸고, 결혼도 했고, 아비도 되었고, 기어이 구멍가게 주인이 되었다. 꿈은 실적 이백프로로 이루어졌다. 평생 걸어다니거나 버스를 타고 다닐것이라 생각했는데, 여섯번을 떨어진 후에 운전면허도 땄고, 자가용도 생겼다. 동료 사원들과 죽기전에 어디까지 타보게 될까? 그랜저를 한번은 타보게 될까 하는 소리를 술자리에서 했고, 비엠베나 벤쯔까지 꿈을 꾸는 친구도 있었지만, 그건 너무 과도하다고 생각했다. 외제차는 평생에 꿈도 못꿀일 이었는데, 어쩌다 미국와서 살다보니 외제차만 타게 되었다. 푸드스탬프로 사는 무소득층도 낡았으나 벤쯔를 끌고 다니는 시골마을이다.

민주화라는 말은 알지도 못했고, 사회주의, 공산주의 같은 말은 뱉는 즉시 교수형에 처하는 줄 알았으므로, 그쪽에 대해 생각하는 건 꿈조차 꾸지 못한 일이었는데, 귀가 열리고 그런 말도 아무렇지 않게 듣게 되었다.

생각해보면 꿈은 꾸는 대로 다 이루어졌다. 그런데도 꿈을 다 이룬 현실을 투덜거리며 산다. 꿈꿀 때 몰랐던 것이 꿈과 함께 왔기 때문이다. 동전은 앞면만 오지 않았다. 뒷면을 데리고 왔고, 이젠 평화로운 일상을 꿈꾼다. 그 꿈도 이루어 질 것이다. 거동도 못하는 채, 하루종일 방안에서 적막한 평화를 머지않아 누리게 될것이다. 노인네들이 그러셨듯이 어여 죽기를 꿈꾸고, 종내는 그렇게 될 것이다.

오늘도 입금할 돈이 모잘라서, 새가슴을 졸이며 돈을 세고 다시 꺼내어 세다가, 문득, 어릴 때 동생과 나누던 대화가 생각났다. - 형, 하루종일 돈만 세면 얼마나 좋을까? 증말 좋겠지?  

난 지금 하루종일 짓무른 눈을 비비며 돈을 센다. 그것도 딸라돈만. 아, 지랄! 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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