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

박상화 0 698

17살, 볼리비아에서 온 아이는 고기를 썰고 국그릇을 씻는다. 영어를 한마디도 못하는 아이는 그저 웃을 수 밖에 없다. 아이는 아버지와 텍사스에서 살다가 아버지가 감옥에 가는 바람에 아버지의 친구인 이 식당주인에게 의탁하게 되었다. 

간혹 유통기한이 지나 반품처리된 과자를 나눠주면 고마운 표시로 환하게 웃는다. 웃는 얼굴을 보면 착하고 순수한 아이다. 트럼프의 예를 들지 않더라도, 아이의 아버지가 불법체류로 끌려갔을 것을 짐작하지 않더라도, 이렇게 제도나 권력이나 돈 때문에 찢어져 사는 가족을 보는 것은 아픈 일이다. 처음 아이를 데려왔을 때, 식당주인은 학교를 다닐 것이라고 소개를 받았는데, 불법체류가 걸려서였을 것으로 짐작하지만, 아이는 낮부터 일만한다. 그런 아이를 청소년노동이 불법이라고 하여, 아동학대라고 하여 제도의 아가리에 밀어넣는 일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아이는 묵묵히 일을 하며 아빠를 다시 만나는 꿈이거나 어른이 되는 꿈을 꾸는 것 같은 눈빛으로 마주치면 수줍은 눈인사를 보내기 때문이다. 이 작은 주방이, 또는 좁은 타코버스안이 아이가 세상의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나 있을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다. 그렇게 매일 손님을 기다리며 밤 열시를 기다린다. 둘 다 문을 닫고 하루의 노동이 끝나는 시간이다.

옷은 무엇이건 걸치는 순간 그 안의 사람을 잡아 먹는다. 시인이라는 옷, 직업이라는 옷, 유명브랜드라는 옷, 작업복, 군복, 너덜너덜한 홈리스의 옷, 자동차라는 옷, 그것이 그 안의 사람을 움직이게 만들고, 그 안의 사람을 규정한다. 그 안의 사람을 부끄럽게도 만들고 우쭐하게도 만든다. 자기가 걸친 옷에 시달리다가, 그 기준에 맞는 사람처럼 보이기 위해 무척 많은 시간과 노력을 소모하다가, 어느새 사람은 소멸되고 옷만 남는다. 거리는 온통 옷들의 행진, 옷이 없이 규정되는 사람은 없다. 타인의 인식이 나를 만들고, 나는 그 인식의 기준에 맞추려고 힘겨운 날들을 보낸다. 지하철을 입은 사람과 자가용을 입은 사람, 기사가 딸린 자가용이나 비행기를, 미국 대통령이라는 옷을 입은 사람, 빌딩이라는 옷을 입은 사람, 유명 강사라는 옷이거나, 옷은 크고 무거울 수록 더 크고 무거운 압력으로 사람을 소멸시킨다. 무엇을 먹는 가하는 문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먹고 입는 그 가운데에 낀 사람, 나, 도대체 나는 무엇일까. 사람들이 예의와 관계를 지키는 데 소비되는 시간과 공도 만만치 않다. 상갓집에서 실컷 울고나서 누가 죽었냐고 묻는 사람이 있다는 속담을 이제사 이해한다. 우는 게 더 중요했던 것이다. 남의 옷을 위하여 나는 쫒기기도 한다. 누군가의 옷 때문에 하루아침에 쫒겨나 거리에서 싸우는 많은 페친들이 있음도 안다. 그들에게 작업복은 가정의 행복이었고, 그들을 쫒아낸 옷에게 작업복은 그냥 옷이었을 것이므로.

일본드라마 love in tokyo도 재밌네. 역사는 바뀌라고 있는 것이라니, 어쩌면 역사는 바뀌지 말라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이 계속 옷과 밥에게 잠식당하는 역사가 언제 어떻게 바뀔 수 있단 말인가. 내가 찬밥을 먹어도 나를 친구로 보아줄 사람들과 친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요즘, 과거의 나는 그러지 못했다는 자책이 업보일 것이라는 생각을 만든다. 바빠서 돌아보지 못했던, 그래서 연락이 끊겼던 친구에게 새삼 미안하다. 저녁을 먹고나면 허물없이 찾아가 커피 한잔을 마시고 싶다고 얘기할 수 있는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던 수필은 한 때 우리 나이 또래들에게 참 인기였으나, 그런 친구를 가까이 만들지 못하고, 나는 이 먼곳에 와 이런 저런 생각으로 나를 찾는다. 벗이 거적을 뒤집어 써도 마주하여 그 속을 알아줄 수 있는 나는 찾아질 것인가. 위선을 벗어내는 일은 어려운 일이다.

10시가 넘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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