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

조선남 시인, [눈물도 때로는 희망] 표사글

조성웅 1 903

시인에게 어울리진 않지만, 조선남 시인은 내가 아는 한 가장 뛰어난 조직가 중의 한 명이었다. 그는 나를 시인으로 인정해준, 함께 하자고 손을 내민 처음이었다. 난 조선남 시인의 두 번째 시집 퇴고본을 읽으면서 2000년대 초, 그가 매일 새벽에 일어나 커피를 타고, 새벽별의 안내를 따라 길 나서는 무렵을 헤아려 보곤 했다. 어쩌면 여명은 조선남 시인의 몸에 스며 든 시였는지도 모른다. 대구 지역 건설현장의 새벽을 깨우는 그의 발자국 소리가 이곳까지 들리는 듯하다. 대구건설노조의 창립과 2006년 대구지역 건설노동자들의 파업투쟁은 그의 가장 뛰어난 시가 아니었을까?

조선남 시인은 뛰어난 언변을 타고 나진 않았지만 사람 마음을 움직이는 특이한 매력이 있었다. 이 특이한 매력은 무엇보다 삶의 실감에 구체적으로 가 닿는 그의 정성스런 마음에서 돋아났다.
 
조선남 시인은 선천적으로 사람을 앓는다. "자본의 이윤에 약탈당한 빈 껍질"인 스스로를 앓았다. "길을 걷다가 내 곁에서 발걸음같이 하는 것도/두려웠다. 혹 수배자의 애인으로 지목받을까"봐 아내를 앓았다. "투쟁하고 감옥이나 들락거리면서/네가 얼마나 아팠고/힘들었는지 눈길 한 번 주지 못"했음으로 딸들을 앓았다.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얼마나 더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날품팔이 건설노동자, 고단함 숨결을 앓았다. "한 번만이라도 내 이름을 불러다오/철근 쟁이 이씨가 아니라 이철복/노동자의 이름을 불러다오" “우리 스스로가 우리의 희망으로 일어서”려는 노동자계급의 전망을 앓았다. 그렇게 조선남 시인은 시대를 앓았다. 이것이 그의 "사랑"이었다. "사랑한다는 말보다/더 혁명적인 언어를 들어본 적이 없다” 이것이 그의 시였던 것이다.

 

조선남 시인의 사랑의 방식은 "하방"이었다. "머리만 아는 것이 아니라,/주둥아리로 말만 하는 것이 아니라,/몸이 느껴질 때까지/가장 낮은 곳에서 일하면서 느껴야 할 것"이었고 "벽돌 한 장, 톱질 한 번 해 보지 않은 평론가의 이야기” 밖에서 구성되는 “계급의식”이었다. 수많은 논쟁의 밤을 거치면서 도달한 “투쟁만큼 확실한 이론은 없다” 이것이 그가 겪어 낸 하방의 속살이었다. 가장 낮은 곳에서 함께 일하면서 소금 꽃처럼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경찰의 살인적인 진압 앞에 설 수 없고 목숨 걸고 동지를 지켜낼 수 없다. 생의 두려움을 넘어서는 투쟁 속에서 이론은 새롭게 쓰여 져야 했던 것이다. 그의 하방은 “잃어버린 소중한 우리의 꿈을 되찾고 빼앗긴 자들의 노래를 낮은 소리로 함께 부르는”,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혁명적 언어가 싹트는 대지였다.
 
조선남 시인의 이번 시집은 아내를 위한 “사모곡”이고 “혁명의 한 시대가 저물고”, “저기 허물처럼 벗어놓은 작업복”에 스며드는 “연가”이다. 조선남 시인의 “시는 그렇게 늘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마을에/그리워하는 그 무엇에/지독하게 좌절하고 난 뒤에/바람이 휑하게 불고 가슴이 시려 흘리는 눈물”에 깃드는 것이고 “이웃집 문간을 고치듯이 이웃의 삶을 보듬고 토닥여 주는 일”이다. 전망부재의 시대에 “눈물도 때로는 희망이더라”고 말할 수 있는 조선남 시인이 우리 곁에 있다는 건 참 다행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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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김영철
이 글은 표사글이 아니고 발문글  이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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