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

절창 - 전상순

해방글터 0 611

 

절창

하도 가물라서 포도밭에는 물을 두 번이나 대었다. 한 번은 수로를 막아 수멍아구지로 물을 댔는데 포도밭 뒷편은 구베가 높아 포도골로 물이 들어간동 만동이다. 다른 집에는 남자들이 척척 양수기를 동원해서 골마다 물을 그득그득 채워 포도나무 아랫도리가 흠뻑 젖게 물을 주는데, 내 밭 포도낭구는 아랫도리는 커녕 발톱에 때도 안 붓게 물이 드가다 말았으니 깔짝 감질만 심허게 되었다. 거기다 스방 동원해서 물 푼 포도밭 여편네들은 오매가매 날 보고 왜 물을 더 푸지 안 푸냐고, 물을 더 퍼 엥기야 포도송아리도 길쑥길쑥하게 빠져 알솎기가 수월타고 날며들며 쪼아 싸니, 아무리 내 귀가 팔랑귀가 아니라고 하나 속에서 애간장 타는 걸 감출 수가 없다. 그래 할 수 없이 건너편 포도밭 아이씨한테 아순 소릴해서 양수기로 물을 저녁 늦도록 펐다. 양수기에 물을 푸면 그냥 나는 밭고랑에 앉아, 어허, 물님아, 너 참 잘 들어간다...에헴 이러고 앉았는 줄 아나? 천만에 말씀이다. 삽자루를 움켜쥐고 고랑 마다 물이 수로로 도로 흘러 나가지 않게 진흙을 떠다 다 막아야한다. 그 일이 여간 고된게 아니다. 흙이 없으니 물길 내어 놓은 수로에 천년만년 뻘로 가라 앉은 쪼대흙을 삽으로 퍼올리자면 맹장 여불떼기에 붙어 있는 힘까정 다 뽑아 올려야한다. 그래 물 고인 고랑을 다 막아 놓고 별이 하나 둘 뜰라고 머뭇거리는 시간에 바짓가랭이 달라 붙은 흙을 털어내며 농로가로 나와 그제서야 장화를 벗어 장화 속에 굴러 다니는 작은 돌멩이들을 털어낸다. 용쓰며 삽자루 쥐고 밭고랑 뛰 댕기며 물 댈 때는 그저 물이 잘 들어가니 흐믓하여 미친년 널 뛰듯 뛰댕기다가, 털썩 달이 내다 걸리고 문득 어둠이 제 외투자락을 휘익 깔아놓은 시간에 농로에 혼자 퍼대지고 앉았으면 거참, 사는기 거시기 하지. 입에서 쓴내 단내가 짬뽕이 되서 똥꾸릉내가 나고.

 

그래 날이 저물고 밥 한 술 먹고는 서방이 꺼땡기는 방을 굳이 마다하고 마루 바닥에 뻣뻣해진 허리를 쫘악 펴며 누울 때 터져나오는 소리 한 자락, 아이구구구구구......

십수 년 노동으로 갈고 닦은 절창 한 소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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