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

눈물도 때로는 희망

박상화 2 570

 

그는 목수 조씨입니다. 

 

형틀목공으로, 조적공으로, 건설현장 인부로 굵어 온 잔뼈가 50년 인생 중 삼십몇년이 넘었습니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교복대신 작업복을 입고, 등교 대신 출근을 하며, 야간자율학습대신 야근을 하고, 사랑의 매 대신 노가다 호통을 맞고, 방학대신 또 다른 일거리를 찾아 종종걸음을 하며, 온 몸의 근육이 망치질과 질통질에 최적화 된 세월을 살아낸 사람입니다. 오죽하면 그는 <목수에게 망치는>이라는 시를 다 썼습니다. 

 

 

<목수에게 망치는>

 

 

목수에게 망치는 손이다.

망치 하나면 못하는 것이 없다.

묘기는 아니지만 병 따기는 기본이고,

깡통을 따는 것은 물론이다.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손의 역할도 한다.

 

몇 번 자기 손등을 내리찍고

몇 번 손톱이 빠져 보기도 하고

아픔이 크고 고통이 길수록

망치는 민감해진다.

망치는 손이 느끼는 감각을 느끼고

손이 느끼는 아픔을 느끼기도 한다.

 

망치가 녹이 슬면,

목수의 손도 곱아 든다.

망치 소리가 멈추면 현장이 멈춘다.

하늘 위를 빙빙 도는 크레인이 멈추고,

세상도 멈춘다.

 

세상을 멈춘 목수의 망치는, 세상을 바꾼다.

세상을 건설하는 것은 목수의 망치 소리다.

목수에게 망치는 희망이다.

 

 

공부가 하고 싶어서 책을 얻어 읽고, 자야하는 시간에 어둑한 글을 베끼며, 철자법도 모르고 영어도 모르지만, 사는 글들을 써 두기 시작했습니다. 인생이 무엇인지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 알고 싶어서, 학교에 다니지 못해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없어서,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쓰고 또 쓰던 사람입니다. 

 

그렇게 손바닥에 굳은 살이 박히고 뜯기고 다시 박히고 또 뜯겨나가도록 그의 글도 새겨지고 다져졌습니다. 1989년 제1회 전태일문학상에 추천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루하루 일당나가기 바쁘고 먹고 살기 바빠서, 문단엔 나가보지도 못하고, 일하다 휴식시간에 손바닥보다 작은 수첩에 흙묻은 손으로 침바른 메모를 하는 것이 그의 시인생활이었습니다.   

 

2000년 문예미학사에서 첫 시집 <희망수첩>을 내고나서 16년만에 두번째 시집을 내게 되었습니다. 언어를 조탁하고 시상을 가다듬느라고 그렇게 오래 걸린 것이 아닙니다. 그는 망치질을 하다가 생각나면 썼고, 씻고 저녁먹고나면 골아 떨어져야 하는 잠을 줄여가며 썼고, 막노동을 나가는 새벽에 그 짧은 짬을 내서 썼습니다. 건설노동조합 파업을 주도하다 교도소에 갇혀서 썼고, 독방에서 못읽던 책을 읽고 글을 썼습니다. 

 

2001년도에 어찌어찌 그렇게 바쁜 게 일상인 사람들만 모여서 <전국노동자글쓰기 모임 해방글터>라는 모임을 만들긴 했는데, 인터넷이 발달하기 시작하면서 알게 되어 만난 사람들이, 한사람은 서울에, 대구에, 부산에, 울산에, 각자 뿔뿔이 살고, 일분도 바쁜 사람들이라 일년에 한번 만나기도 힘이 들었습니다. 

 

일년이나 이년에 한번 만나는 이걸 모임이라고 해야할지, 뭐라고 해야할지 모를 정도였고, 동인지를 한번 내려도 각자 주머니를 털어 그 돈마련이 어려웠던 사람들, 시라고 맨날 현장 얘기, 투쟁 얘기만 써서 시집을 내도 팔리지도 않아, 1쇄를 넘겨 본 적이 한번도 없는 데다가, 아무도 모르고 누가 봐주지도 않는 데 자기들끼리 문학이 좋아서 모이고 알고 지내는 사람들, 그러다 보니 또 빠지고, 새로 들어오기도 하면서 15년이 흘러갔습니다. 15년동안 같이 얼굴보고 만난게 열번도 안됩니다. 

 

아무도 몰라도 괜찮다, 우리는 우리의 삶을 살면서 보고 느낀 문학을 하고, 우리끼리만 좋아도 고맙다. 일년에 한번 갖는 모임도 가급적 노동자대회나 연대방문일정과 맞춰야 했고, 오고가고 다른 사람들 인사하고 그런 시간빼면 우리끼리는 밤을 꼴닥 새도 서너시간 남짓이 전부였습니다. 술을 취하도록 마실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는 모임이었지만, 그래서인지 만나면 그렇게 반갑고 오랜 친구를 만난 듯 좋았습니다.

 

다음에 소개하는 시는 제가 대구출장 갔다가 선남형을 잠깐 만나고 돌아오던 날을 쓴 것입니다. 

 

<기차표에 쫒긴 소줏잔 이야기>

 

대구였어, 자주 와 봤지만 

늘 목표점만 찍고 돌아가는 바람에 

안개 속 같이 낯설던 도시 

 

동대구역 기차는 매진만을 향해 달리고 

내 차례 기차표는 

두 시간 후에나 출발한다고 적혀 있었지 

 

대구에 왔으면 막창을 먹어봐야 한다며 

소주 한 잔 않고 가면 섭섭하다는 형 

버스 두 정거장 길을 걸으며 

형을 찾아가던 거리에서 

날 부르는 우렁찬 고함소릴 들었지 

길이 낯선 나를 찾아 막 뛰어 온 입김 

길 건너에서 숨찬 손을 흔들던 반가운 마중 

 

막창은 다 궈지지도 않았는데 

시간에 쫒겨 

한잔 더 마시라 자꾸 따라주던 소주 

막창 한 점 장에 찍어 먹고 

소주 잔 비우기 무섭게 채워 석잔씩 먹고 

20분 남고 15분 남고 

표를 버릴까 말까, 자꾸 막잔이던 

 

아쉬워도 가야할 길이 있으니 

발개진 얼굴로 어둠을 뚫고 온 택시를 탔네 

잘 가라 잘 가라 흔들리면서 

입 안에 남아도는 막창 맛에 

얼근한 취기로 이별을 아쉬워 했네 

 

찬 소주로 만든 뱃속 따뜻한 온기여 

이 살가운 소주를 언제나 다시 마실까 

막창처럼 잘리고 빵구난 삶을 

눈물장 찍어 질깃질깃 이어가는 사람들 

우리 일년만에 만나서 

막창 댓점 소주 세병을 나누었으니 

쫒기다 쫒기다 

기차표에 쫒긴 소줏잔 이야기 

 

2004.11.22

 

시쓰는 것보다 먹고 살고, 집회나가고, 성명서 쓰고, 싸우러 다니는 게 바쁘던 사람들. 늘 시가 가장 뒷전이던 시인들, 그러면서도 가슴에 간직한 문학에 대한 동경과 열망때문에 오래오래 끊어지지 않게 연결되던 사람들, 공통점이라고는 가난하고 바쁘다는 것 밖에 없지만, 못난 놈들끼리 서로 알아보고 만나면 반가운 그것이었습니다. 

 

명망도 없고, 누가 시평 한 번 해 주는 사람도 없어도, 그래도 그저 좋아서 계속 시를 쓰고, 인터넷에 올렸습니다. 그렇게 한 십오년 지나니까 세권의 동인시집과 동인마다 한두권씩의 시집들이 축적되었습니다. 이번에도 그동안 시집 못낸 동인들 셋이 공동시집을 엮고 가자고 시작한 일이 또 어긋나 혼자 시집을 내게 되었고, 돈이 부족한 덕에 넘치는 시를 아끼고 아껴서 한권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살다보니 저는 미국에 와 있고, 제주도에도 동인이 생겨서 이젠 전국노동자글쓰기모임이 아니라 전세계라고 해야 할른지 모르지만, 인터넷 덕에 우리가 아직 인연을 이어가며 살아가는 일들을 나누고 있습니다. 

 

형의 두번째 시집 출간을 축하하고, 가지 못하는 마음이 거기 앉아 있다는 걸 서로가 알기에 이 출판기념회가 그리 쓸쓸하지 만은 않기를 바랍니다. 이번에도 우리끼리 만나서 우리 몇명이 기념할 출판 기념회가 되겠지만, 그리 외로워 하지 마십시요. 

 

우리 못났고, 

아무도 알지 못하는 우리끼리 시인들이지만, 

우리의 문학은 한번도 삶의 진지함을 잃어본 적 없었으니, 

많은 독자가 열광하는 문학은 아니었지만, 

외롭게 싸우고 용기가 필요한 노동자들에게 한번씩 가서 어깨에 손 얹어주고 그 곁에 가만히 앉아 있어 주던 문학이었으니, 

세상이 혁명을 하던 붕괴를 하던 

우리는 늘 외롭게 싸우던 몇 소수를 쳐다보고 외로운 그들과 함께 하고자 해왔으니, 

그것이 이론도 모르고 배우지 못한 우리의 문학이었고, 

시인 명단에도 없는 우리의 이름이었으니, 

이제 여기에 지어진 한권의 시집이 얼마나 좋은 일인지를 어떻게 말씀드릴수 있을까 모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다만, 그렇습니다. 

 

 

2016.10.24 미국에서 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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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김영철
잘 썻고 고맙네
글터의 역사도 절절하고
박상화
제가 일도 않고, 변변찮게 주둥이만 살어놔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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