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글

장마 신경림

김영철 3 1,905

 

 

온 집안이 퀴퀴한 돼지 비린내

사무실패들이 이장집 사랑방에서

중톳을 잡아 날궂이를 벌인 덕에

우리들 한산 인부는 헛간에 죽치고

개평돼지 비계를 새우젖에 찍는다.

 

끝발나던 금광시절 요리집 얘기 끝에

음담패설로 신바람 나다가도

벌써 여니레째 비가 쏟아져

담배도 전표도 바닥난 주머니

작업복과 뼤속까지 스미는 곰팡네

 

 

(장마철 인부들의 일상에서 시인은 후각적 이미지를

시의 중심에 세우고  노동자의 고단한 삶이 군더기없이 고스란히 다가오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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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박상화
톳은 돼지의 옛말입니다. 돝, 돗, 돋에 짐승새끼를 뜻하는 아지가 붙어서 돝+아지->도야지->돼지가 되었습니다.
도토리도 어원이 돼지입니다. 돼지를 뜻하는 돝에 알맹이를 뜻하는 알이가 붙어서 돝+알이-> 도토리가 되었습니다. 도토리를 돼지가 먹는 밤이라고도 했습니다. 그래서 학자들은 돝+밤->도토리라고 풀어씁니다.

어원을 알면 말이 생긴 뜻을 알게 되어 재미있고, 한번 더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데 어원이 밝혀진 말보다 모르는 말이 더 많기도 합니다.

닭도리탕도 도리가 볶음을 뜻하는 일본어에서 왔다고 해서, 한동안 쓰지 않았는데, 우리가 먹는 닭도리탕은 볶음이 아니므로 일본어에서 온 게 아니라 원래 우리말에 도리탕이라는 말이 있었다는 주장이 나왔습니다. 그러므로 닭도리탕은 고유한 한글이라는 것입니다. 확실히 닭도리탕은 우리가 아는 볶음으로 하는 요리는 아닙니다. 그러나 이런 어원을 알수있는 옛책이 너무 많이 소실되어서 지금으로선 사료로 확인할수 없는 말이 닭도리탕입니다.

아버지, 어머니도 어원이 확실하지 않은 가운데 주장이 많은 글입니다.
아버지는 아버지, 아부지, 아바지로 부르나, 아버지의 원형은 압+아지이고, 앞선 사람(아지)이거나, 앗(씨앗)+아지, 아이+받이라고도 해석합니다.
어머니는 아예 어원이 없습니다. 아이+주머니로 해석하는 사람도 있는데, 정설도 아니고 확실치 않습니다.
같은 (앞사람) 부모인데, 왜 아버지는 아지를 붙이고 어머니는 어니가 붙었을까요?
흥미로운 점은 멕시코인들의 언어에서도 아빠, 엄마는 아빠, 엄마로 부른다는 점입니다. 영어에서 파파, 마마로 부르는 것도 유사합니다.

어쨋든 어원연구로 들어가면 복잡하고 연구가들의 영역입니다. 거기까지 갈 건 없지만, 사용 사례가 너무 없어서 학자들마다 의견이 분분한건 사실입니다.

형님같이 토속어, 사투리를 쓰던 사람들이 기록을 남기지 않으면 몇십년, 몇백년후엔 없어지는 말들도 많을 것입니다. 어원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표준말보다 사투리에서 더 많은 힌트를 찾습니다. 사투리에는 입말로 전해내려오는 어원의 근거가 더 많이 남아있습니다. 물론 지금의 연구자들이 이미 많은 사투리를 수집하고 기록해 놓았겠지만, 아직도 연구되지 못한 입말들이 많이 남아있을 것입니다. 구술기록이나, 사투리를 사용한 문학작품은 그래서 더 소중합니다. 또한 사투리 한마디로 그 어릴적 옛날로 돌아가는 타임머신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사투리로만 나눌수 있는 정서가 있을 겁니다. 표준말로는 느껴지지 않는 정서가 있습니다. 가만히 기억을 더듬다 보면 옛어른들이 하시던 말씀이 생각나실테고, 그것은 아마도 지금은 먹을 수 없는 옛날에 먹던 그 어떤 그리운 맛과도 같은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사람의 글은 자신도 모르게 흐르는 맛의 결이 있습니다. 아무 레시피도 없던 어머니의 손맛처럼, 누구나 인생을 산 경험과 축적된 철학에 따라 배어나오는 맛, 그런 것들이 글씨에서 보여지듯이 글에도 담겨있습니다. 형님의 글은 그 옛날을 회상하는 곳에서 가장 맛깔진 표현이 나옵니다. 아마도 그 시절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생각하고, 머무르셨기 때문일 겁니다.

누가 노동자 투쟁을 독려하는 글을 쓰려고 해도 영 글맛이 없고, 그냥 쉽게 옛기억을 되살려 쓴 글이 아주 맛있게 된다면, 그 사람은 그 맛있는 글에 자신의 정서와 사고가 더 많이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지금의 당위성만 가지고 억지로 투쟁글로 가려고 하면 글도 안써지고 마음만 다칩니다. 자신의 마음결이 흐르는 지점을 찾아 그 문학을 파는 것이 훨씬 빠릅니다. 마음이 편한 쪽의 글을 쓰시고, 마음이 좋은 쪽의 글을 쓰세요. 그러면 금방 글이 늡니다. 글이 늘면 지금의 당위성으로 쓰고 싶은 글도 늡니다. 옛날 생각, 어머니 생각, 행복하고 힘들었던 경험들을 이것저것 쓰시다보면 형님의 삶이 녹아있는 글이 나오고, 그걸 발견하시게 될겁니다. 자기 삶이 담긴 자기 문장을 발견하는 그때부터 글이 풀립니다.

지금의 삶이 매일 똑같아서 별로 할 말도 없고 그렇다면 옛추억을 써보세요. 더 많은 글이 나오고, 그것이 더 많은 글쓰기 연습이 됩니다. 글쓰기는 행복하고 편안해야 합니다. 괴로우면 글이 재미가 없어집니다. 요즘 제가 그런 생각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삶이 녹아 풀린 그 글은 이전과 많이 다를 것입니다. 중언부언 쓴 글 죄송합니다. 건강하세요.
김영철
요리저리 뒤적거리며 또 한여름이 가고있네 
며칠전 배차밭 만들며서 땀을 한동우나 흘렸네
이글거리는 태양이 마치 내고향 산천인냥 흠뻑 젖어 보았다네  오래만에 잡은 괭이가 그리반갑고 텟텟 침 발라가며

막상에는 종자값은 고사하고 거져 주어도 살펴 눈치보면서
주아야하는세상살이라네  허나 내가 좋아서 하는일 값이 뭔 소용이 있겠는가?그들에게 위로받음만도 감사 허지

글문도 잘 안열리고 해서 뭔 시책을 읽어 보아도 눈에 차지 않고  너무 날선 내시선이 문제인듯 하지만 가끔은 높은 낭떠리지에 선 시를 보면서 아찔도 하다네

사드로 인해 민중의 정치적 참여가 한단계 성정하는 초석이 될것이네 대추리 강정 송전탑 투쟁을 딛고 국가의 책무가 뭣인가를 묻고 있는 시절이네
만고 대대손손 이어지는 곤크리트 보수의 아성이 과연 얼마나 바꿔 질것인가도 우리시대 책무 이고,,,,,

사람 사는것 아디나 고만 하제
아이들도 많이 자랄을 것이고 시선은 사는곳에 집중하고
시는 완성된 시는 없다네
모두 못난 내 그시절 분신들이네
너무 완성에 집중 하지말고 단 한사람만이라도 내 글에
눈물을 흘리고 용기가 필수 있다면 그만 하면

뭔 공부를 해도 눈도 마음도 어둡기만 하네 해도
또 살아야제 사람들 속으로 들어 가 함께 지지고 볶고 살아야제
Berl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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