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란 무엇인가? - 신경림

옮겨 붙인 이 덧글 :


스스로의 시가 이러하지 않은가 돌이켜보기 위한 잣대를 세우자면,

1. 꼭 필요하지 않은 경우에도 그럴듯하게 보이거나 멋있게 보이고 싶어서 비유나 은유를 갖다 대는 일을 말장난이라고 보신게 아닌가 싶다. 

시 한편에 비유가 은유가 너무 많으면 이미지가 복잡해지고 요지가 금방 들어오지 않는다. 이것은 시란 너무 쉬워도 안되고 두고 새겨읽어야 요지가 보이는 깊이가 있어야 한다는 것과는 다른 말이다.

은유나 비유는 시 한편에 딱 한개나 두개만 써서 요지를 드러내 보이게 하는 것이 가장 좋다. 그 부분이 시의 핵심이 된다.

제일 좋은 건 한 눈에 쉽게 이해되고, 다시 읽을 때마다 새로운 것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며, 읽고 또 읽어도 좋은 것이다. 한번 봐서는 이해할 수 없고, 두번 세번을 새겨 읽어야 겨우 이해할 수 있으며, 이해하고 난 뒤에 간직하고 싶지 않다면 좋은 시라 할 수 없다.

자기 시를 놓고 볼 때, 마음에 오래 남아 있는 시가 따로 있다. 금방은 잘 쓴 것 같아도 나중에 내가 쓴건가 싶은 시도 있다. 전자가 내 시고, 후자는 흉내낸 시다.

호평을 받지 못해도 내 시를 자꾸 계발해야 시가 된다.

"이걸 몰랐지?"라는 부분은 시를 쓴 본인에게는 놀라운 깨달음이겠지만, 남들은 다 아는 싱거운 것이기 십상이다. 이 부분 때문에 어떤 때는 시가 속담의 범주를 넘어서지 못하는 의심이 들때가 있다. 속담은 오랜 시간 인구에 회자되면서 응축된 의미이기 때문에, 이미 검증된 대중성을 지닌다. 유행가 가사도 그렇다. 시가 속담이나 유행가 가사와 다르려면, 무엇이 더 있어야 하고 무엇이 빠져야 하는가?

"시인이란 자신의 사상이나 감정을 보다 쉽게, 보다 힘있게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을 획득하고 있는 사람이다"(워즈워스(W. Wordsworth)와 코울리지(S.T. Coleridge)가 공동으로 낸 『서정담시집』 (Lyrical Ballads)의 제2판 서문)
 

2. 퇴고시 점검항목

1) 비유와 은유가 쓸데없이 난삽하지 않은가?

2) 꼭 필요한 이해와 성찰이 아니라 가벼운 말장난은 아닌가? (전체를 위해 가벼운 위트가 필요한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런 필수 요소인가 아닌가?)

3) 장황하고 지나친 설명은 아닌가? (초고는 상황대로 쓰다보니 장황하기 쉽다.)

4) 말하고자 한 무엇이 빠진 것은 아닌가? (왜 이 시를 쓰는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5) 무엇을 말하고자 이 시를 썼는가? (적어도 쓴 사람 자신에겐 시의 주제가 보여야 한다.)

6) 안이하고 탄력없지 않은가? (긴장감은 시의 중요한 부분이다.)

7) 누가 이미 쓴 표현이 아닌가? (기존의 시를 차용하고, 차용하였음을 알리는 경우도 많은데, 아주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차용은 하는 순간 이미 나의 시를 죽인다.)

8) 요지 이외에 나머지 부분을 편하게 쓰기 위해 흔한 표현기법을 쓰지 않았는가? (누구 것인지 모르지만 흔한 표현들이 있다. 이런 표현들은 긴장감을 떨어뜨린다.)

9) 필요없이 반복해서 말하고 있지 않은가? (중언부언)

10) 써야만 하는 절실함이 있는가?

11) 목적이 있는가 : 사회적 절규성이 있는가? 기록할 가치가 있는 일인가? 나누어야할 감성인가? 풍자나 저항인가? 따뜻함이나 위로처럼 극복하고자 하는 목적이 담겼는가?

12) 중복된 이미지를 가진 용어가 있거나, 한 이미지를 이 용어, 저 용어로 두번, 세번 말하고 있는지도 보아야 한다.

13) 기승전결이든 무엇의 형태든 전체적인 흐름은 시의 요지를 강조하기 위한 구성으로써 촛점이 맞춰져 있는가?

14) 행을 나누거나 연을 나누는 이유가 작자 본인의 마음속에 뚜렷한가? (보통 행과 연은 호흡을 따라 이야기의 변경을 따라 쉽게 나누어 진다. 행이나 연을 잘못나누면 시 전체가 갑자기 풀어지거나 오해되기 쉽다. )

15) 너무 감정적이거나 감성적인 부분에만 의지하고 있지 않은가?

16) 시가 담은 세계가 한사발 찬물처럼 오롯한가? (이런 느낌은 좀처럼 오지 않는다.)


3. 퇴고 시기

퇴고는 보통 즉각 하기 어렵다. 처음 쓰고 한 두번 고치기는 쉽지만, 이것저것 생각하다보면 피곤해진다. 피곤해지면, 처음의 심상을 잃고 시가 먼 산으로 가게 마련이다.

사람마다 좀 다르고, 상황마다 다르겠지만, 보통은 쓰고 한두번 고치고, 그 초고를 가지고 있다가 다음 날 다시보고 고친다. 하룻밤 자고나면 글이 달리 보인다.

초고와 고친 글을 각각 보관하고, 일주일이나 열흘, 한달쯤 묵힌다. 중간중간 생각나면 고친다.

어느 날 다시 꺼내 보아서(이미 여러날이 지나면 이때는 시를 보는 눈이 거의 객관적인 눈이 된다.) 한 숨에 읽고 괜찮으면, 퇴고를 다시 점검하고 살린다. 좋지 않으면 버리던지, 다시 묵히기를 반복한다. 일년쯤 지나면 살릴지 죽일지가 가름된다.

나같은 경우는, 이 글터 게시판에 묵히는 편이다. 짬짬이 다시 읽기 좋다. 누군가 퇴고되기 전의 글을 읽을 수도 있지만, 초고를 숨기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고 생각하고, 최종적인 퇴고는 책을 엮을 때 다시 하게 되지 않겠는가 한다.

얼마전, 시집을 내려다 포기한 이유도 시가 시답지 않아서, 아직 덜 묵히고 덜 익었다는 생각에서 였다. 책으로 엮어도 되겠다 싶은 시들은 두어개도 안되었다. 나머진 더 익어야 하는 것이었다.

: 퇴고를 위한 이 글도 나중에 다시 퇴고될지 모른다. 익으면 달라질 것이다. 옮겨 붙인 이 덧글 : 스스로의 시가 이러하지 않은가 돌이켜보기 위한 잣대를 세우자면, 1. 꼭 필요하지 않은 경우에도 그럴듯하게 보이거나 멋있게 보이고 싶어서 비유나 은유를 갖다 대는 일을 말장난이라고 보신게 아닌가 싶다. 시 한편에 비유가 은유가 너무 많으면 이미지가 복잡해지고 요지가 금방 들어오지 않는다. 이것은 시란 너무 쉬워도 안되고 두고 새겨읽어야 요지가 보이는 깊이가 있어야 한다는 것과는 다른 말이다. 은유나 비유는 시 한편에 딱 한개나 두개만 써서 요지를 드러내 보이게 하는 것이 가장 좋다. 그 부분이 시의 핵심이 된다. 제일 좋은 건 한 눈에 쉽게 이해되고, 다시 읽을 때마다 새로운 것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며, 읽고 또 읽어도 좋은 것이다. 한번 봐서는 이해할 수 없고, 두번 세번을 새겨 읽어야 겨우 이해할 수 있으며, 이해하고 난 뒤에 간직하고 싶지 않다면 좋은 시라 할 수 없다. 자기 시를 놓고 볼 때, 마음에 오래 남아 있는 시가 따로 있다. 금방은 잘 쓴 것 같아도 나중에 내가 쓴건가 싶은 시도 있다. 전자가 내 시고, 후자는 흉내낸 시다. 호평을 받지 못해도 내 시를 자꾸 계발해야 시가 된다. "이걸 몰랐지?"라는 부분은 시를 쓴 본인에게는 놀라운 깨달음이겠지만, 남들은 다 아는 싱거운 것이기 십상이다. 이 부분 때문에 어떤 때는 시가 속담의 범주를 넘어서지 못하는 의심이 들때가 있다. 속담은 오랜 시간 인구에 회자되면서 응축된 의미이기 때문에, 이미 검증된 대중성을 지닌다. 유행가 가사도 그렇다. 시가 속담이나 유행가 가사와 다르려면, 무엇이 더 있어야 하고 무엇이 빠져야 하는가? "시인이란 자신의 사상이나 감정을 보다 쉽게, 보다 힘있게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을 획득하고 있는 사람이다"(워즈워스(W. Wordsworth)와 코울리지(S.T. Coleridge)가 공동으로 낸 『서정담시집』 (Lyrical Ballads)의 제2판 서문) 2. 퇴고시 점검항목 1) 비유와 은유가 쓸데없이 난삽하지 않은가? 2) 꼭 필요한 이해와 성찰이 아니라 가벼운 말장난은 아닌가? (전체를 위해 가벼운 위트가 필요한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런 필수 요소인가 아닌가?) 3) 장황하고 지나친 설명은 아닌가? (초고는 상황대로 쓰다보니 장황하기 쉽다.) 4) 말하고자 한 무엇이 빠진 것은 아닌가? (왜 이 시를 쓰는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5) 무엇을 말하고자 이 시를 썼는가? (적어도 쓴 사람 자신에겐 시의 주제가 보여야 한다.) 6) 안이하고 탄력없지 않은가? (긴장감은 시의 중요한 부분이다.) 7) 누가 이미 쓴 표현이 아닌가? (기존의 시를 차용하고, 차용하였음을 알리는 경우도 많은데, 아주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차용은 하는 순간 이미 나의 시를 죽인다.) 8) 요지 이외에 나머지 부분을 편하게 쓰기 위해 흔한 표현기법을 쓰지 않았는가? (누구 것인지 모르지만 흔한 표현들이 있다. 이런 표현들은 긴장감을 떨어뜨린다.) 9) 필요없이 반복해서 말하고 있지 않은가? (중언부언) 10) 써야만 하는 절실함이 있는가? 11) 목적이 있는가 : 사회적 절규성이 있는가? 기록할 가치가 있는 일인가? 나누어야할 감성인가? 풍자나 저항인가? 따뜻함이나 위로처럼 극복하고자 하는 목적이 담겼는가? 12) 중복된 이미지를 가진 용어가 있거나, 한 이미지를 이 용어, 저 용어로 두번, 세번 말하고 있는지도 보아야 한다. 13) 기승전결이든 무엇의 형태든 전체적인 흐름은 시의 요지를 강조하기 위한 구성으로써 촛점이 맞춰져 있는가? 14) 행을 나누거나 연을 나누는 이유가 작자 본인의 마음속에 뚜렷한가? (보통 행과 연은 호흡을 따라 이야기의 변경을 따라 쉽게 나누어 진다. 행이나 연을 잘못나누면 시 전체가 갑자기 풀어지거나 오해되기 쉽다. ) 15) 너무 감정적이거나 감성적인 부분에만 의지하고 있지 않은가? 16) 시가 담은 세계가 한사발 찬물처럼 오롯한가? (이런 느낌은 좀처럼 오지 않는다.) 3. 퇴고 시기 퇴고는 보통 즉각 하기 어렵다. 처음 쓰고 한 두번 고치기는 쉽지만, 이것저것 생각하다보면 피곤해진다. 피곤해지면, 처음의 심상을 잃고 시가 먼 산으로 가게 마련이다. 사람마다 좀 다르고, 상황마다 다르겠지만, 보통은 쓰고 한두번 고치고, 그 초고를 가지고 있다가 다음 날 다시보고 고친다. 하룻밤 자고나면 글이 달리 보인다. 초고와 고친 글을 각각 보관하고, 일주일이나 열흘, 한달쯤 묵힌다. 중간중간 생각나면 고친다. 어느 날 다시 꺼내 보아서(이미 여러날이 지나면 이때는 시를 보는 눈이 거의 객관적인 눈이 된다.) 한 숨에 읽고 괜찮으면, 퇴고를 다시 점검하고 살린다. 좋지 않으면 버리던지, 다시 묵히기를 반복한다. 일년쯤 지나면 살릴지 죽일지가 가름된다. 나같은 경우는, 이 글터 게시판에 묵히는 편이다. 짬짬이 다시 읽기 좋다. 누군가 퇴고되기 전의 글을 읽을 수도 있지만, 초고를 숨기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고 생각하고, 최종적인 퇴고는 책을 엮을 때 다시 하게 되지 않겠는가 한다. 얼마전, 시집을 내려다 포기한 이유도 시가 시답지 않아서, 아직 덜 묵히고 덜 익었다는 생각에서 였다. 책으로 엮어도 되겠다 싶은 시들은 두어개도 안되었다. 나머진 더 익어야 하는 것이었다. : 퇴고를 위한 이 글도 나중에 다시 퇴고될지 모른다. 익으면 달라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