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한 자칭 맑스주의자가 새로운 조직 결성에 함께하지 않겠느냐고 찾아왔다 얘기 끝에 그가 물었다 그런데 송동지는 어느 대학 출신이오? 웃으며 나는 고졸이며, 소년원 출신에 노동자 출신이라고 얘기해 주었다 순간 열정적이던 그의 두 눈동자 위로 싸늘하고 비릿한 막 하나가 쳐지는 것을 보았다 허둥대며 그가 말했다 조국해방전선에 함께하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라고 미안하지만 난 그 영광과 함께하지 않았다 십수년이 지난 요즈음다시 또 한 부류의 사람들이 자꾸 어느 조직에 가입되어 있느냐고 묻는다 나는 다시 숨김없이 대답한다 나는 저 들에 가입되어 있다고 저 바다물결에 밀리고 있고 저 꽃잎 안에서 날마다 흔들리고 이 푸르른 나무에 물들어 있으며 저 바람에 선동당하고 있다고 가진 것 없는 이들의 무너진 담벼락 걷어차인 좌판과 목 잘린 구두, 아직 태어나지 못해 아메바처럼 기고 있는 비천한 모든 이들의 말 속에 소속되어 있다고 대답한다 수많은 파문을 자신 안에 새기고도 말없는 저 강물에게 지도받고 있다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