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글

​민간인(民間人) - 김종삼

해방글터 1 1,260

1947년 봄

심야(深夜)

황해도(黃海道) 해주(海州)의 바다

이남(以南)과 이북(以北)의 경계선(境界線) 용당포(浦)

사공은 조심 조심 노를 저어가고 있었다.

울음을 터뜨린 한 영아를 삼킨 곳.

스무 몇 해나 지나서도 누구나 그 수심(水深)을 모른다.

 

 

<시인학교> 1977/ 신현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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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글터
남과 북, 이념의 경계선이던지, 부자와 빈자, 빈부의 경계선이던지, 또는 권력과 민간인의 경계선이던지간에,
경계선에서 힘없는 어린 목숨이 수장된 경우가 이 땅 역사에 한두번이었겠는가.
가만히 있으라, 그러면 구해 주겠다는 말을 믿은 순결한 믿음을 배반하고 약육강식의 논리로만 살아온 자들이
완장을 차고 목에 힘을 주는 경우가 어디 한 두번이었겠는가.
스무 몇 해나 지나 근 칠십해가 되어도 어린 영아를 삼킨 수심을 아무도 모른다
아무도 모르고 누구나 모른다. 알려고 한 적이 없으니 모르는 게 당연하다.
가만히있으면 죽는다.
2014년 4월 16일로부터 그걸 배운지 불과 2년,
세월호를 인양할 생각은 안하고 누구나 잊고 산다. 가만히 있는다.
가만히 있는건 침몰하는 것이다. 기억하는 건 인양하는 것이다.
뜨게질한 그물처럼 한 문제가 풀리면 줄줄이 올이 풀려나갈 것 같은 저 부정과 부패의 사슬에 묶여
누구나 자기 문제만 들여다 보고 산다. 바다가 그 어린 영아들을 삼킨 이유가 그것이었다. 어른들이 살자고 한 짓이었다.
가만히 있으면 바다의 수심은 점점 깊어지는 것이다.
침묵 속에서 누구도 그 수심을 모르게 되는 것이고, 더욱 모르게 되는 것이다.
아이들을 삼킨 바다의 수심은 민간인의 마음속에 있다.

1947년도에 일어난 사건, 1977년도에 출판된 시집, 2016년도에 돌아봐도 시인의 혜안은 놀라울 뿐이다.
김종삼시인이 소주 두병을 훔치고, 알콜 중독이 되어 행려병자가 되던 시절보다 좀 나아졌는가.
이제 경계선에서 "어른들이 살자고" 어린 목숨을 희생하지 않아도 되게 되었는가.
이제 경계선에서 조금 괜찮은 중산층이 살자고 힘없는 빈자들의 목숨을 희생하지 않아도 되게 되었는가.
그 수심을 누가 측량할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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