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글

<참배꽃> <수평선 너머>

해방글터 0 931

​   그리운 내 고향 우리 옛집 뒷울에

    늙은 참배나무 하나 서 있었네.

    어느 할아버지 심은지 할아버지도 모른 나무.

    아버지 따라 나도 거름 주던 큰 늙은 참배나무.


세기와 싸운 몸통 꾸부러지고 주름살 가고,
썩고 버러지 파먹어 거문고 소리만 나도,
그래도 봄 되면 꽃 피었네,
하얀 꽃 구름처럼 피었네.

늙은 그 나무 꽃 필 때면,
할아버지 백발처럼 하얀 꽃 피면,
검은 구름이 늘 꼭 떠돌았지,
돌다간 종내 모진 비바람을 묶어 박곤 했지.

크기 사발 같고
향기 취하는 듯하고
서리 맞아 누른빛 황금보다 더한 듯
입속에 녹아드는 맛 죽지 않은 생명의 영약인 듯.

우리 옛집 울타리 안에 서 있던 참배나무
그 나무 지금 있는지 없는지 나 모르네.
그러나 내 가슴속에 뿌리 박은 늙은 참배나무
늘 거문고 소리 나건만 횐 꽃 피고 참배 열기 잊을 길 없네.

(1952. 3. 2.)〈참배꽃〉(전 18연,부분)


시골장 가보면 우습더라. 버러지 먹다 남은 
쪼그라진 과일을 
한옆이 썩어지기까지 한 것을 
그것도 물건이라고 팔고 앉았는 할아버지가 있더라. 
아무도 거들떠볼 것 같지도 않아도 
그것도 사가는 사람이 있더라. 
 
3대 독자가 병난 지 일곱 달에 
미음도 못 먹어 
평생에 구경도 못한 과일 한번 먹어나 보고 죽으라고 
피전 한 푼 들고 나온 할머니가 
온종일 아래 위 장판을 스무 번 오르내리다가 
해가 질 무렵 
그것 한 알 사가지고 갔다. 
아마 그것 먹고 병이 나을 거다. 낫지 못해도 
빙긋이 웃고 마지막 숨을 넘길 것이다. 
그 사람에겐 남대문 세종로의 과일은 바라볼 길도 없고 
그 병쟁이 썩은 과일만이 
만날 수 있는 하늘에서 준 약이다.
세상에 그런 시가 어디 있느냐? 
서울 장안의 일등 과일,
상품으로는 일등이겠지만 그 시는 모를 거다.
나도 내팔기에는 부끄러운 좀먹은 과일을 안고 
시골 장터로 가 
할머니가 오기를 기다려 보련다. 저무는 길거리에 
티끌을 쓰고 앉아서.

(1961. 11. 10.) <수평선 너머>에서

두번째 글 <수평선 너머>는 시로 쓰신게 아닌데, 글이 너무 좋아서 퍼온 사람이 임의로 행갈이를 해 보았습니다. 
(함석헌 선생님 글입니다) 

내용 접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 카카오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밴드로 보내기

Comments

카테고리
반응형 구글광고 등
최근통계
  • 현재 접속자 11 명
  • 오늘 방문자 298 명
  • 어제 방문자 617 명
  • 최대 방문자 2,936 명
  • 전체 방문자 465,681 명
  • 전체 회원수 15 명
  • 전체 게시물 15,811 개
페이스북에 공유 트위터에 공유 구글플러스에 공유 카카오스토리에 공유 네이버밴드에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