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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철동 시대] 박형규朴炯奎의 속사포 주도酒道 - 강홍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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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철동 시대] 박형규朴炯奎의 속사포 주도酒道 - 강홍규 

 

- 오가는 잔돌림은 피스톤처럼...대작對酌에 진땀, 꽁무니 빼려 여자타령하자, "옆방에 내 딸 있소." 

 

 

평론가이며 전기傳記 연구가인 민병산閔丙山은 관철동에 출입하는 인사들중 유일하게 술을 못 마신다. 단 한잔도 입에 대지 못한다. 

 

술 한잔 입에 못 대지만 민병산은 술꾼들의 세계인 관철동에서 부동의 맹주盟主이다. 그가 유전有田다방에 나타나면 모두들 그를 중심으로 모여 앉는다. 저녁마다 마련되는 술좌석은 '이동식 민병산 살롱'이 돼버린다. 

 

그렇다고 민병산이 앞장을 서는 것은 아니다. 모두들 어울려 술집으로 향할 때도 그는 항상 꽁무니에 처져 느릿느릿 따라온다. 그러나 앞장서 걸어가는 사람들은 늘 뒤통수에 눈을 달고 그의 걸음걸이에 보조를 맞춘다. 

 

술을 못하지만 민병산은 애주가이다. 술을 사랑한다. 일년내내 관철동에 나타나지 않는 날이 없는데 저녁때가 되면 또 어김없이 친구들과 어울려 술집을 찾는다. 말하자면 술한잔 못하는 술꾼인 셈이다. 

 

어느해 여름날 저녁, 내가 한국기원을 나오면서 꽁무니를 뺄 기세이자 민병산이 소매를 잡았다. 

 

"이사람 왜 이러나!" 

 

"오늘은 사양해야겠습니다." 

 

"술꾼이 그래서 쓰나!" 

 

"안되겠습니다. 간밤에 너무 무리를 했던 것 같습니다." 

 

"잔소리 말고 따라와. 비도 오고 출출한데 한 잔 하고 가야 할 것 아닌가!" 

 

이렇게 되면 내가 항복해야 한다. 비오는 여름날 저녁 뱃속이 출출한 기분까지 느낄 줄 아는 사람이니 민병산은 갈 데 없는 술꾼이다. 그러므로 그의 술과 술꾼에 관한 정의定義에도 권위가 따른다. 

 

"내가 경험한 최고의 술꾼은 역시 김관식이었어." 

 

민병산이 이렇게 허두를 떼면 <최고의 술꾼>이 되지 못한 다른 술꾼들이 그의 다음 말에 귀를 세울 수 밖에 없다. 민병산은 명동의 <은성>에서 만났었던 김관식金冠植의 추억을 더듬는다. 

 

"술잔에 술을 따르면서 한마디 연설을 하고, 그 술잔을 높이 쳐들고는 상대의 말 끝나기를 기다리고, 술잔을 도로 내려 놓으면서 커다랗게 껄걸 웃고, 다시 그 잔을 들어 입술에 가져갔다가는 금방 할말이 생각났다는 듯 잔을 도로 내려놓고는 또 일장 연설을 하고 그렇게 해서 술 한잔 비우는데 십분이고 이십분이 걸리는 거야. 김관식은 신선神仙이 다 됐더군." 

 

김관식金冠植이 주선酒仙이었다는 말이지만 실은 우리가 너무 게걸스럽게 술을 마시는 것을 빗대는 내용이다. 

 

민병산의 말대로 김관식의 음주태도가 백점이라면 러시아 문학가 박형규朴炯奎는 빵점이다. 박형규朴炯奎의 술잔에는 술이 차 있는 법이 없다. 아니 그의 앞에는 술잔이 놓일 때가 없다. 술잔에 술을 따르자마자 즉결처분을 하고 번개같이 상대에게 권한다. 

 

여럿이 마시는 술 좌석이라면 별로 표가 안나지만 그와 단 둘이 앉아 있을 때는 여간 곤혹스럽지가 않다. 

 

피스톤처럼 술잔이 즉시즉시 왔다갔다 하니 술자리에 앉은지 30분이 안되어 꼭대기까지 취해 버린다. 

 

한번은 관철동 식구들이 약속을 했다. 박형규朴炯奎가 술잔을 권하면 절대로 적당한 시간이 되기까지 술잔을 돌려주지 말자는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 아무리 술을 빨리 마시고 싶어도 어쩔 수 없을 것이었다. 

 

그날도 역시 그는 첫잔을 즉결처분하고 옆사람에게 빈잔을 쑥 내밀었다. 

그것은 상대에게 한 잔 권한다기보다는 어서 빨리 마시고 내게 따르라는 암시가 담겨 있었다. 

 

그러나 한번 떠난 술잔이 다시는 그에게 돌아갈 줄 몰랐다. 모두들 곁눈으로 그의 표정을 구경하고 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가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이 역연했다. 

 

드디어 그가 술잔 두 개를 앞에 놓은 시인 황명걸黃明杰을 노려보기 시작했다. 황명걸은 계속 딴청을 부리고 있었다. 그가 이번에는 나와 소설가 김문수金文洙를 번갈아 노려 보았다. 우리도 날씨 얘기나 하면서 한껏 능청을 떨었다. 

 

곁눈으로 보는 그의 얼굴이 처참해져 있었다. 그가 고개를 푹 꺾었다. 그러나 보이는 것은 술잔이 없는 자기 앞의 빈 탁자뿐이었다. 

 

갑자기 박형규가 고개를 쳐들었다. 무언가 간교한 계략에 의해 벌어진 상황이라는 것을 확신한 듯 비장한 얼굴이었다. 그가 황명걸의 술잔을 덥석 잡았다. 동시에 황명걸이 그의 팔목을 잡았다. 

 

"박교수, 이건 제 잔입니다." 

 

"아이쿠, 그렇습니까! 이거 실례했습니다!" 

 

이번에는 그가 김문수의 잔을 잡았다. 그러나 김문수도 재빨리 손을 뻗어 잔을 빼앗았다. 

 

"선생님, 이건 제 잔입니다." 

 

그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해서 다음 순간의 변화를 예측하기가 어려워 보였다. 그때 내가 얼른 잔을 비워 그에게 권하지 않았던들 아마도 술 탁자가 온전하지 못했으리라. 

 

내가 처음 박형규를 만난 것은 1970년 여름이었다. 당시 나는 작고한 시인 구자운具滋雲이 편집국장을 하던 「월간月刊 스포츠」라는 스포츠 전문잡지의 기자였다. 

 

어느날 점심시간에 민병산과 홍명희洪明熹가 찾아왔다. 홍명희는 당시 신구문화사新丘文化社 편집부 직원으로서 나하고는 동갑내기로 꽤 가까이 지내는 사이였다. 촉망받는 소설 지망생이었는데 아깝게도 재주를 꽃피우지 못하고 요절했다. 

 

정릉에 사는 박형규라는 러시아 문학가의 생일에 초대를 받았는데 같이 가자는 것이었다. 마침 잡지가 나온 직후여서 한가하고 따분한 여름날 하오였으므로 구자운과 나는 즉석에서 따라 나섰다. 

 

처음 만나 술을 마시면서 구자운과 나는 박형규에게 금방 반했다. 통역을 할 수 있을 정도의 러시아어 실력이 있던 구자운은 러시아 문학론으로 그와 의기투합했고, 그보다 십여년이나 연하인 나에게 깎듯이 "선생님, 선생님."하는 통에 무조건 우쭐해져서 마구 술을 들이켰다. 

 

밤이 되자 민병산과 구자운, 홍명희가 자리를 떴다. 

 

그런데 박형규가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겁없이 마구 술잔을 받는 것이 꽤 대견하게 여겨졌던 모양이었다. 아무튼 엉덩이가 무겁기로 유명한 내가 초면의 그에게 적쟎이 폐를 끼치며 뭉개고 있는 동안에 통금시간이 다 돼가고 있었다. 

 

"이젠 가봐야겠습니다." 

 

"아니오. 우리집에서 자고 가시오. 총각이 뭐 어떻소. 댁에 기다리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닌데." 

 

그러나 아무리 염치가 없어도 그렇게까지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엇다. 

 

"선생님, 솔직히 말하자면 전 술마시고는 여자없이 자 본 일이 없는 사람입니다." 

 

상대가 옴쭉달싹 못하는 구실을 만든다는 것이 너무나도 천박해지고 말았다. 그가 잠시 아연한 얼굴이더니 잠잠했다. 이 막돼먹은 녀석의 코를 납작하게 해줄 말을 찾고 있는 것이었다. 

 

"좋소. 이 방문을 열면 마루가 나오고 그 마루 건넌방에 내 딸이 자고 있소. 이제 됐쟎소!" 

 

더 이상은 저항할 수 없었다. 마침내 침몰할 때까지 그가 계속 술을 안겼으므로, 그날 밤 내게는 그 마루를 횡단할 기회가 한 번도 주어지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관철동貫鐵洞 시대/ 강홍규康弘圭 저著/ 일선출판사日善出版社/ 1987/ 값3000원 /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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