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터의 책


신경현 제2시집 <따뜻한 밥/ 갈무리/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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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위축 속에서도 그간 노동시의 끊임없는 실험과 투쟁의 힘을 지속적으로 표출해온 [마이노리티시선] 서른세번 째 책으로 신경현 시인의 두 번째 시집 [따뜻한 밥]이 출간되었다.

 

신경현 시인은 현장 노동자들의 글쓰기 모임인 [해방글터] 동인으로 스스로가 용접노동자이면서 오랜 동안 성서공단노동조합 노동자들, 이주노동자들과 함께 동고동락해오며 쓴 시들을 이번 시집에 담았다. 시인은 이 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이름으로 죽음을 생산하는 신자유주의를 넘어서 국가를 위한 민주주의가 아닌 “죽은 자를 추모하고 산자를 위해 투쟁”하는 민주주의를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이 민주주의는 자본과 민족국가에 의해 기계로 취급되기를 거부하는 이주노동자들과 함께 저항하며 서로 따뜻한 밥을 나눠 먹음으로서 이뤄짐을 시인은 웅변하고 있다. 

 

이것은 오늘날 노동문학이 자본이 만든 정규직과 비정규직이란 경계와 국가가 만든 이주노동자와 비이주노동자라는 경계를 넘어서려는 창조적인 노력의 성취이다. 또한 신경현 시인이 우리 사회에서 유폐된 진실과 상처를 끄집어내며 오늘날 비정규직 노동자와 이주노동자의 슬픔과, 고통, 분노와 투쟁을 그린 독특한 시어(詩語)들에는, 헛된 미망과 혼돈의 시대에 작별을 고하며 우리들이 새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시인의 마음이 오롯이 담겨 있다.

 

[추천사]


김용철 / 민중행동 대표

 

신경현 시인의 시는 누군가에는 불편하고, 누군가에는 눈시울을 붉어지게 만든다.

그런 만큼 그의 시는 성역이 없어서 일 테고, 바닥에 있는 이들에게 향한 지독한 애정 때문일 테다.

 

가끔씩 그의 싯말에 있는 마찌꼬바 공장의 언어들을 보면 노동자들 누구나 신경현 시인처럼 시인이 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렇다고 아무나 신경현 시인처럼 될 수 없다는 생각도 들게 해준다.

이는 마찌꼬바 공장의 한숨 섞인 절망적 일상들을 기막히게 희망으로 연결시켜 주기 때문일 게다.

그렇다. 그의 시는 성서공단의 깊은 밤 프레스소리를 우리들에게 들려주어 각성하게 해주고

우리 사회에서 유폐된 진실과 상처를 끄집어내주기 때문에 불편함과 함께 떨리게 하는 것일 게다.

 

그는 용접공이나 지금은 성서공단노조에서 이주노동자와 동고동락을 하고 있다. 

이 시대의 이주한 전태일과 함께……

그렇다. 전태일 동지가 떠나신지 40년

그러나 바뀐 게 하나 없는 40년 이 노동의 현실에서

그는 몸으로서, 술로서 그리고 시로서 부당한 현실에 비켜서지 않고 살아가고 있다.

 

신경현 시인은 늘 술자리에서 오래 살고 싶지 않다고 한다.

야만의 사회, 부조리한 자본주의 세상에 오래 산다는 게 시인에게는 구차하게 다가올지 모르지만……

불편한 시를 계속 써야 할 변함없을 현실에서, 그의 시와 깊은 공명을 이루고 있을 동지들에겐 여간 억울한 게 아닐 게다.

그의 시가 적셔줄 감성의 깊이와 힘없는 자들이 느끼는 위로가 한없이 크기에

그와 더불어 사는 우리는 행복한 게다

그래서 그의 시를 오래도록 만나고 싶은 게다.

 

헛구호와 말의 잔치가 홍수인 이 시대에

아날로그로 살아가는

그와 그의 시에게

아낌없는 존경을 보낸다.

 

목차 

 

 

1부

 

겨울 논에서

발가락

가난한 동네

개폼 잡고 쓴 시

모른다

폐차장에서

한 시절

서른 살

고전적으로 눈이 내리고

멀었나 보다, 아직

내려놓고 싶은 새벽 두 시

상수리나무에 대하여

도끼

 

 

2부

 

신자유주의 만세

푸른 수인의 밤

질문. 2

평택

피도 눈물도 없는 놈

국까의 민주주의

밥값

묻지 마라, 그 물음의 해답을

잠시, 이 밤을 기억하자

미치고 환장할 충고

증언

CCTV

죽은 자를 추모 하고 산자를 위해 투쟁하라!!

저 눈동자를 보아라

태극기가 바람에 펄럭입니다

여기는 중환자실

 

 

3부

 

지나 간다

聖 노동조합 

나는 누구입니까

마당처럼 겸손해져라

미안하다, 미친 소

꽃무늬 팬티

그 마을을 구하소서

나는 행복하다

내 마음에 핀 꽃무리

따뜻한 밥

거기 그렇게 있었네

 

 

4부

 

배웅

심란한 풍경

달이 두개?

공장의 밤

슈먼 후세인이 잡혀간 날 TV를 보며

씨팔, 기막힌 밤 이었다

불안한 동거

조카에게

달린다

안입니다

그 여자의 눈물

무거운 파일

쪽팔린다

 

발문ㆍ멀었나 보다, 아직 / 이득재[대구 가톨릭대학 교수, 인터넷 '참세상' 논설위원]

 

멀었나 보다, 아직

 

말들 속엔 피가 돌지 않고

생각 속엔 근육이 꿈틀대지 않는다

― [죽은 자를 추모하고 산자를 위해 투쟁하라] 중에서

 

내가 월급쟁이인지 임노동자인지, 내가 노동자인지 노동자계급인지도 구분하지 못하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최근 금속노조 대구지부의 상신브레이크 사태는 자본의 공격의 힘 한번 제대로 써 보지 못하는 노동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돈 주는 인간이 사장인지 자본가인지 구분하지 못한 탓인가.

자본가들은 늘 노동자들에게 적대적인데 노동자들이 거꾸로 자본가들에게 비적대적인 세상이 도래했다. 노동자들 중 대다수가 비정규직이고 이제는 노동시간 유연화로 시급제가 더욱더 확산될 판이다.

자본가들이 국가를 앞세워 노동자들의 삶을 벼랑 끝으로 모는 탓에 힘에 부친 탓일까?

자본과 국가의 밀어 붙이는 힘이 여간 버거운 것이 아니다.

하지만 노동자들이 말과 생각을 앞세워 실천하지 않는데 더 문제가 있다.

노동자들이 국가와 자본을 거세게 밀어 붙이지 못하는 것은 그동안 파업보다는 협상을 내세우는데 너무 길들여져 있는 탓이 아닐까 모르겠다.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어쩌면 이제는 자본가의 편이 되어 버린 정규직 노동자와 선을 그어야 할지도 모른다.

다시 전노협 시절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러나 세상은 그 시절과 달리 착취 이외에 수탈과 억압이 동시에 존재하는 곳이 되어 버렸다.

자본주의가 노동을 착취하는 흡혈귀라면 노동 착취도 모자라 자본주의는 노동자를 소비자로 둔갑시켜 알량하게 올라간 임금 인상분마저도 야금야금 갉아 먹는다.

게다가 강남 개발로 시작한 개발의 욕망이 천정부지로 솟구치면서 한국판 자본주의는 노동자의 임금을 수탈하고 있고 여기에 사교육비까지 가세해 노동자의 삶을 한바탕 더 뒤흔들어 놓고 있다. 

국가 장치의 노동자에 대한 억압이 거세지면서 노동자들은 그야말로 사면초가에 놓여 있다. 계급투쟁이 노동 운동 영역에서만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변형된 형태로 수탈과 억압의 영역에서도 일어나고 있지만 투쟁의 파고를 사회로 번지게 하기에는 너무도 힘겨워 보인다. 어디서부터 손대야 한 판 제대로 붙을 수 있는 것일까. 

맑스의 시대와 달리 인간의 탐욕이 너무 번져 산이고 들이고 다 태우듯이 착취의 불길에서 수탈의 불길로 인간의 탐욕이 확산일로에 있기 때문일까. 얼마 전 부산 해운대에서 일어난 화재는 인화성이 강한 재료 탓이 아니라 프리미엄을 얻고자 하는, 불로소득에 환장한 인간의 탐욕이 불러낸 필연의 결과였다.

 

(중략)

 

신경현 시인의 시에는 유독 밥이 눈에 자주 뜨인다. 

[저 눈을 보아라], [신자유주의 만세], [내려놓고 싶은 새벽 두 시], [꽃무늬 팬티] 등 주린 배와 배고픈 눈을 만들어낸 자본주의에 주목하는 신경현 시인에게 밥은 “함께 먹어야 더 따뜻해지는 이 밥”([따뜻한 밥―3?8 세계 여성 노동자의 날에 부쳐])이기도 하고 반성의 매개체이기도 하다. 

[밥값]에서 시인은 밥을 먹으면서 밥을 “죽음을 통해서만 비로소 자신의 이름과 자신의 작업복과 자신의 동료들이 알려질 때 내 분노와 의지는 과연 마치 그 동안은 몰랐던 것처럼 한 노동자를 죽음으로 내 몬 비정한 자본주의 사회를 비판하는 저 세상과 어떻게 다를까 생각”하는 반성의 매개물로 사용한다. 

한 노동자가 죽음을 관통했을 때에야 비로소 내 분노와 의지가 발동되는 것인지, 자본주의 사회를 비판하는 내 분노와 의지 또한 비정한 것은 아니었는지, 시인은 밥을 매개로 깊은 사색을 한다. 특히 다음과 같은 시 ?씨팔, 기막힌 밤 이었다?는 짜장면이라는 밥에서 촉발된 깊은 서정이 봉오리를 여는 봄꽃에 실려 만개한 듯하다. 

 

세 손가락을 프레스에 잡아먹힌 손으로도 

능숙하게 술을 먹는 그를 보면서 

그 손은 어떻게 된 거냐고 

분명 눈물 콧물 흘릴 그이의 어머니를 생각하면 

왜 하필 이런 개 같은 나라엘 왔냐고 

돌아가선 다신 이 나라는 잊어버리라고 

말하고 싶은 밤 이었다 

 

그러나 끝내 별말 없이 

우리는 그 밤의 짜장면을 먹을 수밖에 없었다 

씨팔, 기막힌 밤 이었다 

 

노동자는 손가락을 세 개나 잃어버렸지만 중국집 사장이 성의 없이 던져 준 메뉴판에서 고른 짜장면이 불어터진 몰골로 나타났을 때 그 몰골을 손가락 없는 손으로 주워들어야 했던 날도 기막힌 풍경이지만, 밖에는 눈이 내리고 주전자는 덜덜거리며 끓고 있는, 기가 막혀 뭐라 표현할 길이 없는 기막힌 풍경 앞에서 시인은 욕 말고는 말문이 막힐 뿐이다. 

말하고 싶었지만 짜장면으로 말을 억눌러야 했던, “창 밖 어둠보다 더 깊이 내려앉은 시간을 넘기고 있었”던 순간의 풍경도 기가 막힌 밤의 풍경이었지만 나머지 두 손가락으로 술잔을 드는 모습을 쳐다본다는 것도 기가 막힌(하략)

 

 

신경현 

 

1973년 경북 안동에서 태어났다. 대구와 울산 등지에서 용접일을 했고, 2007년부터 대구 성서공단노동조합에서 일했다. 지금은 지리산 자락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로 살고 있다. 해방글터 동인이며, 시집으로 [그 노래를 들어라], [따뜻한 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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