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상순1963년생

흐르는 대로

횃대 1 1,403


만리포 다녀온지 일주일이 되었네
다녀오고 이틀 뒤에 티비에 만리포 옆동네쯤으로 보이는 곳이 나왔다
해삼이 제철이라고 물질하는 아낙들이 바다에 들어갔다 나오면 배가 올챙이처럼 볼록하게 되어나왔다
뱃전에 올라와 울컥울컥 배를 쏟아내면 해삼이 한바케스씩 쏟아져나온다
앙다문 입을 달싹도 하지 않고 설움도 아닌 해삼을 쏟아내었다
해삼.
멍게나 해삼.

열세살즈음에는 대구시 수성구 범어동 동도초등학교 담벼락 뒤편을 돌아
성 프란체스카 범어동 성당이 있는 동네에 살았다
그 길다란 하꼬방 집에는 적어도 일곱 아니면 여덟가구가 주인집 포함해서 살고 있었는데, 집 뒤편으로는 성당의 아카시아 울타리가 이맘때쯤이면 검은 잎들을 와아아아아 쏟아내고 있었다.

주인할머니는 얼굴이 뽀얀할머니였는데, 그 뽀얀 피부색과는 상관없이 늘 셋방사는 사람들의 물 씀씀이를 나무라거나, 둘째아들 병수녀석의 돈달라는 악다구니에 맞대응하는 욕지거리로 쨍쨍한 대낮의 더위를 더욱 짜증나게 돋구웠다.

얼마나 알뜰하고 살뜰하였는지 입고 있는 무명 몸빼바지는 깁고 깁고 또 기워 입어 원래 제 천쪼가리는 하나도 없을성 싶었다.
그래도 늠름하게 마당 긴 집의 세멘바닥을 나이롱 빗자루가 마루고 닳도록 쓸고 다녔다.

살갑게 웃을 때도 더러 있었지만, 늘 눈썹사이에는 내천자 문양을 그려넣고 눈빛은 옛 일본강점기 시절의 순사놈 눈초리를 닮았다. 세 들어 사는 모든 아이들이 할머니와 마주치기를 싫어 했다

할머니의 큰아들은 공부를 잘하여 고시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그 역시 엄마가 주는 용돈의 궁함을 온몸으로 나타내고 다녔다.
입고 다니는 바지의 엉덩이 부분이 낡고 닳아서 나달나달 했는데, 행여 속옷이 보일까바 자주 청색군용 테이프를 바지 안쪽에다 붙이고 다녔다.
그래도 여전히 둘째아들 병수는 뺀질뺀질 거짓말로 할머니의 주머니를 풀어제끼고 동네 구멍가게에서 병수의 뽈다구니를 돌돌 굴러다니는 눈깔 사탕의 양각자욱은 자주 보는 풍경이다.

우리방
자고 나면 우풍으로 자리끼 물대접에 살얼음이 끼던 방
그 방 앞에는 손바닥만한 들마루가 있고, 들마루와 무릎이 닿도록 들인 방에는 덕현이네가 살았다
꾸며만 놓으면 훤하디 훤한 덕현이 어무이는 부잣집 마나님 태가 완연했는데, 덕현이 아부지는 천상 해삼멍게장사의 몰골에서 한 치 벗어남이 없다.
간델라 불빛이 조을때까지 멍게와 해삼은 덕현이 아부지 리어카 좌판에서 퍼들어 졌다가 한바가지 물에 쪼그라 들었다 반복하다가 그래도 팔다 남는 것은 가끔 우리집으로 날아왔다
폭우가 쏟아져 일찌감치 장사 끝내고 돌아오는 날은 한 이틀 노름방에 있다가 돌아와 늦은 잠에서 깬 아부지와 술 한잔하면서 해삼을 작살내고 있었는데, 그거 얻어 먹는 재미에 아부지의 생이 답답하건, 덕현이 아부지가 그날은 본전을 못 건지던 아무 상관이 없었다.

멍게의 꼭지를 따면, 물을 잔뜩 머금은 멍게가 애가 오줌 누둣 쭈욱 뱉어내며 대가리 한쪽을 뻐꿈하게 내어놓았다
손가락을 집어 넣고 멍게 몸통을 돌려빼면 주황색의 야리꾸리한 냄새가 나는 멍게 속살이 뽑혀져 나왔다.
칼집을 쓰윽 넣어 똥을 빼내고 맹물에 설렁설렁 두어번 행궈 반쪽 갈라주는 멍게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입안에서 침이 츠르릅 고여 눈알이 멍게색깔로 변했다.

덕현이 아부지는 장비처럼 수염이 밤까시마냥 터부룩하게 났는데, 아이들은 어데서 그렇게 매꼬롬히 뽑아냈는지, 덕현이와 그 밑에 아이도 유난히 뽀얗고 귀여웠다.

덕현이 아부지 처제는 양공주였다
입다 싫증난 멍게속살색 윗옷을 내게 주기도 했는데, 그 나이에 어울리지않는 옷이라 장롱 속에 넣어 두었다가 아무도 없는 날에 혼자 꺼네 가만히 입어 보기도 했다.
아... 언제쯤이면 이 옷을 입고 바깥에 나갈 수 있을까
얼마나 더 기다려야 이 아귀같은 단칸방에서 해방이 될까.

가끔 덕현이 이모는 팝콘을 가져왔는데, 연탄불에 은박지냄비와 팝콘이 아셈브리로 포장이 된 것을 얹고 우리는 신기한 듯 둘러 앉아서 현기증 나는 연탄가스를 그대로 들여마셨다.
반짝반짝 반짝이는 은박지 안에는 타닥타닥 생들이 튀겨지고 있었는데, 그 신기한 꼴이란 침이 질질 흐르도록 기맥힌 것이였다

한 냄비 튀겨서 고사리 손에 한 웅큼씩 얻어먹고 나면, 그 고소한 빠다냄새가 입 안에 종일토록 남아 팝콘 껍데기가 끼인 입천장 어디쯤으르 혓바닥으로 한 없이 핥고 있는 것이다.

영자네 집은 시장에서 채소장사를 하였다
멀대같은 아저씨는 아줌마 말이라면 꼼짝을 못했는데, 딸만 내리 셋을 낳았다가 마지막으로 아들 하나 얻어 아줌마는 마구 큰소리를 쳤다.
시장에서 늘상 부딪치는 자잘한 싸움에 이력이 난 영자어무이는 주인 할머니와 맞대가리를 놓아도 지지 않는 가장 험악한 입의 소유자였는데 내가 그 집을 떠나 십수년 뒤에도 여전히 범어시장에서 채소장사를 하고 있었다. 큰 딸이름만 기억나는 영자엄마. 그 밑에 아이들이야 숙자가 되었던 말자가 되었던 끝순이가 되었던 아무 상관이 없다. 그저 아들 하나 얻었기에.

내 삶의 비애는 이 집에서 다 치른 듯 하다.
동생이 아팠고, 아버지는 날마다 홀린 듯 벌인 것을 다 노름판에 털어 넣고, 엄마는 날보고 한 되 아니면 두 되의 쌀을 사오라고 심부름을 보냈다.
막걸리 부어 밀가루를 개어서 죽은놈 이마빡같은 식은 방구들에 묻어두면, 밀가루는 있지도 않는 희망처럼 벙싯 부풀어 올랐다
그 헛헛한 희망에다 친구에게 얻어온 선인장 새끼를 심어 놓고 날마다 물을 주었다. 어느날, 어느날, 꽃이 피리라 기대를 무너뜨리며 폭삭 선인장이 썩어 내리던 날, 수채구멍 옆에 블록구멍에 모래를 채우고 심었던 내 소유의 땅 한뙈기도 같이 무너져 내렸다.
선인장과 모래를 문밖에 같이 쏟아져 버리면서, 훗날 이런 시시한 세멘블록 구멍만한 땅보다 훨 많고 단단한 땅을 가지리라 앙다물고 다짐을 했었다.


오늘.
천평남짓한 포도밭에서 종일 일을 한다.
등때기는 땀띠가 솟는가 톡톡 살갗이 불어나는 느낌이 온다
마디마디 손가락이 아프고, 저 빌어 먹을 꿩새끼는 왜 저리 옮기다니며 울어쌌는지. 아니 웃어 쌌는지.

종일 내 땅을 밟고 발바닥에 신열이 나도록 서 있었는데...하마트면 울뻔했다.


저 옛날, 사그러져가는 한 날의 아름다운 다짐을 생각했더라면, 그 고됨쯤은 예사로히 넘겼을텐데....그러나 그 때는 태양의 흑점이 하도 난동을 부려 아무것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빌어먹을.



이렇게 속에것을 풀어놓으면 마음이 가라앉는다.
흐르는대로 마음을 놓아두어야지...아무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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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박상화
그러니까 1975년쯤 대구 풍경이네요.  에고..  그 시절, 그러니까 저는 고독을 알아가던 때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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