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상순1963년생

시어머니와 메밀묵

횃대 2 2,007

 

시엄니와 메밀묵

 

엄니, 저기 하늘 나라에서 잘 계시지유?  아버님도 작년에 하늘 나라 엄니 찾아 먼길 가셨으니 두분 정답게 만나셔서 얼마나 좋으시겠어유. 고서방과 저두 잘 지내고 있습니다요.

 

이제 설명절이 며칠 안 남았세요. 엄니 살아계실때 같으면 지금부터 명절 음식 장만하느라고 정신이 없겠쥬? 오늘은 이월 초 이튿날, 엄니와 제가 명절 전 마지막 장을 보러 갔을거예요. 엄니는 불편한 걸음으로 따라 오시고 나는 앞서다가 다리걸에서 한참을 기다리고  또 앞서다가 뉴마트 앞에서 기다리고, 떡 방앗간에서 기다리고, 하나로 마트 앞에서도 발걸음을 멈추고.......그렇게 장바구니를 오른손 왼손 번갈아 잡아가며 엄니를 기다리며 장에 다녀 오곤 했지요.

어머님, 하늘 나라에서도 메밀묵 해서 드시는지요. 엄니의 메밀묵은 정말 정성이 들어간 음식이였어요. 제가 혼담 있고 이 집에 첨 놀러 왔을 때도 엄니는 메밀묵에 종종 썬 김치를 맛난 양념 간장을 얹어서 내왔더랬어요. 밤 늦게 방문했는데도 엄니께서 잠결에 일어나 메밀묵을 따끈하게 말아서 가져 오셨어오. 그 때 참 맛있게 먹었습니다.

그렇게 맛있던 메밀묵도 시집 와서 만들어 먹으려니 너무 힘들어서 쳐다도 보기 싫어졌지요.

명절이 되면 아들네들 멕이려고 어머님은 서둘러 메밀묵 만들 준비를 하셨세요. 메밀을 한 나절 내도록 절구에 콩콩 빻아 메밀 귀퉁이 가시를 슬어내고 까불어서 뜨거운 물을 부어 메밀을 불렸지요. 아침 먹고 나면 치울 여가도 없이 메밀을 방앗간에서 빻아 와  치대서 메밀 전분을 내렸지요. 한번은 뻑뻑한 메밀전분물을 내리다가 체가 둘러빠지는 바람에 한 다라이 받아 놓은 메밀전분물에  체 속에 있던 찌꺼기까지 다라이에 쏟아져서 욕을 하셨지요. "에이 씨발, 이기 왜 둘러 빠지노"

어렵게 받쳐 놓았던 다라이 메밀물을 다시 걸러서 메밀묵을 하는데, 그 뒤에서 수발 드는 저는 얼마나 부애가 났겠어요

"젠장, 저렇게 욕할라믄 말라꼬 메밀묵을 하시노, 내가 뭐 체 밑구멍 빠지라고 기돌했나 어쨋나..."

그래도 그 말을 입 밖에 안 뱉고 꾹꾹 눌러 참으며 묵을 끓이고 젓고 해서 메밀묵을 만들었습니다.

메밀묵을 두부틀에 부어 놓고 엄니와 나는 뜨거운 묵을 한 그릇 퍼서 양념장을 똑똑 떠놓구선 마주 앉아 땀을 흘리며 한 그릇씩 먹었지유. 조금 전까지 힘들었던 마음은 살짝 내려 놓구요

드뎌 설명절이 시작되고 아들네, 손자 손녀들이 벅적거리며 앉았으면 그게 보기 좋아 엄니는 하루 종일 이걸 차려와라 저걸 깎아 와라 밖에 나가 그것도 좀 퍼와라, 홍시를 트개서 갖다 줘라......며느리 힘들다는 생각보다 배부르다며 손사레를 쳐도 그 자식들 입에 뭐하나라도 더 멕이고 싶어 안달을 하셨세요. 그럴 때 마다 나는 더욱 입을 꼭 다물고 어금니가 부스러져라 치미는 것들을 눌러 놓았세요.

그래서 요즘 어금니 치료하느라 치과에 다닌다고 고달퍼 죽겟어요 ㅎㅎㅎㅎ

이제 아들들이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 되었군요. 그렇게 차려서 먹여도 메밀묵은 먹을 새가 없어서 못 먹었습니다. 서둘러 짐을 챙기는 객지 식구들에게 봉다리 싸주기 바쁘십니다. 냉동실 떡 들이 다 나오고, 부침개며 곶감이며 시래기 삶은 뭉테기에 무, 배추, 고구마 등등등등.  그렇게 싣고 떠나려는데 엄니께서 소리치십니다. "아이구야, 내가 메밀묵을 잊아묵었네. 야야 가서 메밀묵 좀 싸서 가져 온나"

엄니와 같이 메밀묵을 나눠 봉다리에 싸면서 나는 기어코 엄니에게 한 소절 내지릅니다.

" 먹을 새도 없는 메밀묵 만든다고 욕은 왜 그렇게 하셨세요?"

나는 주머니 속에 있는 송곳을 만지작만지작 거리다가 결국에는 어머님을 찔렀습니다. 엄니께서 뜨악~~쳐다보시더니 암말도 않고 봉다리를 짜매셨시유. ㅎㅎ

엄니, 이제 설명절 되어도 엄니 막내 아들집만 우리와 같이 차례를 지내요. 아버님 좋아하신다고 기어이 만들든 수정과도 이젠 안 만들고요 단술도 해 놓으면 먹는 사람이 별루 없어서 조금만 하고 말아요. 강정도 갖가지 하던 것을 고만 한 봉다리 사구 말구요. 비지 띄워 먹는다고 열심히 만들던 두부도 애저녁에 접었습니다. 명절이래야 별루 할게 없네요

 

엄니, 엄니 사시는 그곳에도 지금쯤 떡방앗간에 하얀 김들이 힘차게 뿜어지나요? 기름집 앞을 지나가면 천리를 진동시키는 참기름 들기름 고소한 내음도 나나요? 무엇 보다 거기도 메밀묵 만들어서 갖은 고명으로 따끈하게 한 그릇 드실 데가 있는지요?

엄니하고 저하고  때론 딸 같이, 때론 칼날 위를 서슬 푸르게 걸었어도, 오늘 이렇게 엄니를 내 옆에 불러 모시고 글을 쓰는 말미에는 이유도 알 수 없는 목메임에 달구똥같은 눈물이 쭈루룩 흐르네요. 엄니 이번 설은 아버님이랑 나란히 손잡고 우리집에 오셔서 차례 음식 맛나게 드셔요. 제가 맛있게 맹글어 놓을팅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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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김영철
황간 포도아지매  어서오셔요  아직 방구석이 차 지만 쬐금 지나문 날도 풀리고 뜨신 해질것이요
혀튼 이곳에서 글 보니 그 냄시가 새롭소  찬찬히 둘러볼라요
횃대
옛날에 쓴글 대충 찾아서 올릴게요 당분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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