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웅 / 1969년생 / 플랜트 배관공

해밀

조성웅 0 228

 

진창 속에서도 단단해지는 마음이 있다

 

그 마음이 가 닿은 곳

비 개인 맑은 하늘을 좋아했다

 

비 개인 맑은 하늘이 

우리말로 ‘해밀’이라고 가르쳐 준 이는 돌쑥이었다 

 

비 개인 맑은 하늘이 잠시, 

내 가슴 속에 뜬 날이 있었다 

 

내 두 번째 시집의 표지는 

2004년, 현대중공업 하청노동자들에 의한 최초의 현장 중식 집회 사진이었다

지금은 세상에 없는 나만의 연덕흠 열사도 있고 

블랙리스에 걸려 조선소를 전전하다 거제도에 정착 해 

2022년, 대우조선 하청노동자들의 공장점거파업에 참여했던 내 친구 김덕용도 보인다 

 

삶은 무조건 흐렸고  

흐린 날은 선천적, 이라고 생각하기도 했었다 

출근길은 고통스런 한걸음 한걸음으로 이뤄져 있었지만 

고통의 진창 속에서도 단단해지는 마음이 있다 

하청노동자도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한마음 한걸음이 사귀어 일으키는 삶의 화학작용, 

연덕흠 열사의 절박한 마음 곁에 해밀

내 친구 덕용이의 간절한 몸짓 곁에 해밀 

저 외침 곁에 해밀, 저 깃발 곁에 해밀, 저 긍지 곁에 해밀  

그런 날이 오는 것이다 

 

내 20대 후반, 죽어라고 학습하던 시기에 

러시아 어느 지역의 볼셰비키 당원들의 평균 나이가 20대라는 것을 읽고 

가슴이 벅찼던 기억이 있다 

올해 쉰다섯인 나이에 내 20대를 되돌아보면 뭣도 모를 나이인데 

뭣도 모르고 덤벼드는 것이 혁명이었다

뭣도 모르고 눈빛이 맑아지고 뭣도 모르고 몸짓을 바꿔 춤을 추고 뭣도 모르고 인간에 대한 예의를 배우고 뭣도 모르고 숨통 같은 우정을 배우고 뭣도 모르고 제도로 굳어진 명령을 거부하고 뭣도 모르고 무작정 평등에 이르고 뭣도 모르고 삶을 뒤집어 축제에 이르는 것이다 

혁명은

흥에 몸을 태워 어디로 튈지 모르는 자유로운 몸짓이다 살아보고 싶은 모든 가능성들이 몸에 착착 감기는 날이다  

혁명은

 

오늘은 

바닥이었던 삶이 비 개인 맑은 하늘로 몸 바꾸는 날이다 

오늘은 

비 개인 맑은 하늘이  

온통 내 피부색을 바꾸는 날이다 

스며 들고 전염되는 시간이다

 

파랑波浪파랑波浪파랑波浪파랑波浪

나는 오늘부터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은 인류다

 

모두 함께 도래할 해밀이다  

2023년1월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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