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웅 / 1969년생 / 플랜트 배관공
- 임재춘 형의 삶을 기억하며
다른 삶을 낳지 못하는 투쟁은
얼마나 외로웠던가
얼마나 고통스러웠던가
분노로만 내어 지른 선동에는 파랑波浪이 일지 않았다
적과 타협하지 않았지만 쉰 쇠소리만 깊어갈 때
재춘형을 만났다
어눌하고 조리도 없고 맘 급하면 더듬거리기도 하던 말투를
난 용케도 처음부터 알아먹었다
인간다움의 온기를 유지하려는 삶의 항온성 같았다
유창하고 조리 있는 언어는 시나브로 비수가 되지만
그의 언어는
마음과 정성을 돌담처럼 쌓아
마침내 그 마음 한 자리 얻게 하는
온기의 지혜였다
낯선 거리,
더 이상 무너지지 않겠다는 의지로 바닥과 바닥을 잇고 이었다
그렇게 재춘형이 세운 삶의 바리케이드는 주방이었다
밥주걱은 기타를 만들었던 장인의 손에 쥐어진 투쟁강령인지도 모른다
주방은 무대가 아니었기에 주목 받지 못했지만
그의 유일한 관심사는 애틋하게 챙기는 일이었다
장인의 손맛은 과연 남달라서
모두가 든든해졌다
불신의 응달도 순식간에 따뜻해졌다
그가 차린 밥상은 둥글고 둥글어서
각진 모서리의 마음도 밥상의 온기를 닮아갔다
찰진 밥알들은 투명했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 한 공기 같은
속 깊은 대화가 시작됐다
장인의 손맛에는
노동자 민주주의가 구성되는 모든 종류의 미생물들이 살고 있었다
기타를 만들었던 장인의 손끝에서
이윤을 위해서는 아무 것도 생산하지 않는
사랑과 우정과 연대의 감응시스템,
한 번은 살아보고 싶은 세계가 태어났다
그는 바닥이었으나 이미 시였고
그는 바닥이었으나 이미 노래였고
그는 바닥이었으나 이미 묵화였고
그는 바닥이었으나 이미 영화였다
그는 바닥이었으나
지치고 병든 마음 부축해주는 파랑波浪이었다
다시 설레게 하고 꿈꾸게 하는 파랑波浪이었고 파랑波浪이었다
치유로 직조된 창조의 파랑波浪,파랑波浪이었다
순둥순둥 거리의 성자聖者
재춘형을 만난 건 내 생의 행운이었다
2023년1월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