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글
인구(仁久)아저씨
- 전상순
비 오면 무엇이 서러운지
흔들리는 어깨 위로 술을 부었다
날궂이를 한다고 동네 사람이 뭐라 그런다
한번도 웃어 본적이 없는 듯한
얼굴 주름살은 늘 흙빛이다
어데서 물큰 개비린내가 나면
휘적휘적 바람 든 바짓가랭이를 흔들며
폭 꺼진 대문을 밀치고 나온다
과숫집 왕대포 낡은 유리문은
넘치는 술렁임이 깨어진 틈으로 노상 새어 나오고
누구하나 눈길 주지 않아도 서로를 보듬듯
그렇게 술잔을 한 배씩 돌린다
돌아간다
돌아간다
술잔이 돌아간다
맺힘 없는 눈길로 술잔을 건네는
인구 아저씨의 거칠은 손
월남 가서 부친 돈은
젊은 여편네가 탕진하고
그래도 그리운 살붙이가 가슴에 가득 찰 땐
늙은 어머니의 무르팍에서
가누지 못하는 몸을 눕힌다
새벽에 술렁이는 소릴 듣는다
기차 바퀴에 흔적도 없이
인구아저씨가 사라진 날
늙은 오메는 울지도 않고
그저 오그라든 젖가슴만 쓸어안았다
틀니도 빼 놓은 채
그저 흙빛으로만 앉아 있었다